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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바보야 애초에 사랑은 없어." <더 랍스터(The Lobster)>

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두 가지의 극단적인 선택지를 강요하는 것. 물에 빠지면 아내를 먼저 구할 것이냐 자식을 먼저 구할 것이냐 따위의, 주로 예능에서 MC들이 심심할 때 던져대던 질문이다. 단순한데 가끔 꿀잼. 그 꿀잼 덕분인지 그런 질문을 하는 영화가 간혹 있는데, 이런 영화는 대체적으로 관객에게 둘 다 구리다를 느끼게 하여 그러므로 자신의 소신을 굽힌, 현실적으로 타협한 중간을 선택한 인간의 나약함을 정당화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닌데, 둘 다 너무 구려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선택을 한 거야.’ 관객은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처지를 자신과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

 이 영화도 감독은 주인공을 두 가지 극단적 상황에 던져 놓는다. 커플이어야만 하는 사회와 솔로여야만 하는 사회. 정확히는 솔로이면 안 되는 사회와 커플이면 안 되는 사회. 커플사회에선 커플이 아닌 자는 인간만도 못하다고 여겨져 동물이 되고, 솔로사회에서는 스킨십을 한 자의 신체를 훼손한다. 짧은 설명에도 금방 느껴질 만큼 극단적인 두 선택지 사이에서 주인공은 이런 영화의 예견되는 패턴대로 두 사회 모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치게 된다.

 독특한 소재, 세련된 영상, 그리고 적절한 클래식 배경음악이 잘 버무려진 이 영화는 꽤나 매력적이다. 거기에 짜임새 있는 시나리오와 편집의 힘까지 더해져 한 번도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는 나의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강력한 고정관념이 예상하는 대로 진행되며, ‘진정한 사랑은 어떤 장애물도 이겨낼 수 있어!’라는 메시지와 함께 #LOVEWINS 라는 해쉬태그를 달며 마무리 지을 기세를 보인다. 그래 역시 그저 하나의 영화였구나! 라고 생각하는 찰나, 감독은 연인을 혼자 남겨둔 상태로 갑자기 영화를 끝내며 내 뒤통수를 때렸다.

 "바보야 애초에 사랑은 없다구."

 

 아직 정말 일생일대의 진지한 연애를 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여태껏 본 많은 영화들이 지구 어딘가에서 진짜 사랑이 진행되고 있다고 이야기했었고, 지금도 매 월 새로운 러브스토리가 영화로 개봉되고 있다. 그런데 진짜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며 나에게 진짜 사랑이 존재함을 믿게 한 영화가 오늘 다시 그런 믿음을 헛된 것이라 비웃었다.

 '진짜 사랑이 없다는 것'은 믿기 싫은 얘기지만, 실제 우리 사회를 보면 이 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상황은 맞다. 우리 사회는 짝을 맺는 것을 강요하고 있지만 한편으론 짝을 이루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짝을 찾지 못해 혼자 사는 사람을 패배자라고 생각하고, 또 자기 생각에 어울리지 않는 커플이 있다면 그들이 헤어지기를 바란다. 가끔 어떤 상황에선 '은근히 강요하는 것''대놓고 강요하는 것'보다 더 나쁘다. '나 독재 하는 거 아니요.'하면서 독재하는 느낌이랄까. 이처럼 연애루저에 대한 은근한 눈초리는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따갑고 아프다. 차라리 대놓고 말해줬으면. 그러면 거기에 반박이라도 할 텐데. "어차피 니들 사랑도 다 가짜잖아!" 니들도 사회에서 루저되기 싫어서, 파트너가 강요하는 어떤 특징을 맞추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찧어가며 사는 것 아니냐고.

 

 감독은 이런 상황이라면 차라리 대놓고 강요하는 영화의 상황이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어차피 니들 맘대로 사랑하라고 놔두면 결국 주인공처럼 거울 앞에서 고민하고 말텐데. 어차피 자신의 연인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말텐데. 그럴 바엔 사람들을 동물로 만들어버리거나, 눈을 멀게 하는 게 나은 거라고.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그런 강압은 옳지 않다고. 그러므로 우리는 남의 시선을 평생 신경 쓰며 진짜 자신을 숨기며 사는 지금보다,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 전에 선택을 해야 한다. 타인의 사랑에 대한 은근한 시선. 그 시선을 거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