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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서. 2000년 1월 1일에 개봉을 한 <박하사탕>은 2000년을 집어삼켰다. 설경구는 이 영화로 최고 스타가 되었고, 이창동 감독은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감독, <박하사탕>은 씨네21이 선정한 올해의 영화가 되었다. 올해의 영화 선정 이유 글은 박평식 평론가의 멘트로 시작된다. “내게 최고라는 느낌을 준 영화는 <박하사탕>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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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설경구)가 거쳐 갔던 시간들. 대놓고 정치적이다. 1999년 봄 ‘야유회’. 사흘 전, 1999년 봄 ‘사진기’. 1994년 여름 ‘삶은 아름답다’. 1987 봄 ‘고백’. 1984년 가을 ‘기도’. 1980년 5월 ‘면회’. 1979년 가을 ‘소풍’. 이 일곱 개의 역 중 최소 세 곳의 역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의미 있는 순간들이다. 1987년과 1980년 5월, 영호는 힘들어했고, 1979년 가을이 영호가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1980년만은 5월로 표기했던 것처럼 1979년 역시 10월로 표기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완전 힙합이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했던 이야기가 대놓고 정치적인 순간을 거쳐 가는 것은 어찌 보면 유치한 전개일수도 있다. 그러나 <박하사탕>은 유치하지 않고 왠지 진정성이 느껴졌다. 이것은 이창동에 대한 프리미엄이라기보다는, 이 당시 90년대 2000년대 한국영화에 대한 프리미엄이라는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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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평 중에 이런 평도 있었다. ‘광주가 나옴으로써 이 영화는 광주를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이 영화는 광주에 관한 영화다.’ 그 당시에 영화를 봤다면 나 역시 이런 생각을 했었을 것 같다. 이해가 간다. 그 당시에는 그만큼 광주에 대한 영화가 없었다. 그니까 2018년에 처음으로 6월 항쟁을 다룬 <1987>이 나왔기에 <1987>이 조금 더 고평가를 받았던 것처럼, <박하사탕>은 광주를 제대로 다룬 영화로 얘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광주는 이제, 제대로 다뤄졌는가. <택시운전사>는 절대 아니다. <화려한 휴가>? 부끄럽다. 생각해보면 <택시운전사>는 천만 영화로 ‘기획’되서는 안 됐었다. 아쉽고 아쉽다. 광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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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을 제작할 당시, 제작진의 가장 큰 고민은 이 영화를 영화 순으로 찍느냐, 시간 순으로 찍느냐였다고 한다. 대세는 시간 순. 특히 연기자 설경구가 이를 원했다고 한다. 그래야 감정 몰입이 더 쉬우니까. 영화 순대로 찍으면 설경구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죽겠다고 난리를 쳤어야 하니까. 하지만 감독은 영화 순을 원했다. 첫 번째 이유는 ‘자기가 누군지 모르고 시작하는 것이 잃어버린 자아를 찾는다는 영화의 내적 방향과 일치한다‘는 것이었다. 그니까 ’현재의 영호‘는 너무 많이 변해버려서, ’과거의 영호‘를 잃어버린 것, 즉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것이다. 순수했던 과거의 나 자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관객들과 함께 과거를 거슬러 가는 ’내적 방향‘이 일치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듯하다. 두 번째 이유는 이렇다. ’뒤로 갈수록 점점 감정이 세지는 것을 원하기 때문.’ 내가 본 <박하사탕>은 시간 역순이 아니다. 내가 본 <박하사탕>은 1999년 봄 야유회 당일에 끝나는 영화다. 정확히 영호가 기차에 치이는 순간, 그 순간을 1초라고 가정한다면, 그 1초 동안 무한히 늘어난 영호의 머릿속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그 1초 동안 영호는 과거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도착한 1979년 같은 장소에서 영호는 기차 소리를 듣고 깨닫는다. <인셉션>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 기차 소리는 ‘킥’을 알리는 신호와 같다. Edith Piaf의 Non, Je ne regrette rien. ‘난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요.’ 그러나 노래 제목과 달리 영호는 후회하고 있다. 과거로 가면 갈수록 더 후회가 커지고 있다. 감정이 격해지고 있다. 과거를 역순으로 돌아가고 있기에 영호는 ‘이 때 멈췄어야했는데.’가 아니라 ‘이 때가 더 좋았네.’를 느낀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순간에 영호는 이게 꿈임을 깨닫고,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으며 영화가 끝이 난다. 완벽히 닫힌 결말. 이 영화는 이야기의 다음이 없다. 즉 미래가 없다. ‘기적 중 기적’정도가 일어나야 영호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반복하자면 이 영화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끝이 나는 영화이다. 일말의 희망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과거 돌아볼 생각하지마. 미련 버려. 절대 못 돌아갈 거야. 알겠지. 알겠으면 이제 미래를 봐. 넌 안 죽을 거잖아. 영호처럼 허튼짓 안할 거잖아. 그럼 이제부터 살아가는 거다? 그래. 제대로, 살아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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