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애장품으로 대통령을 골라보자! 대선후보의 애장품

김한우 2017. 4. 16. 14:20

- 이게 웬 물건들이지?

이 물건들은 <한겨레>2017년 대선에 출마한 다섯 명의 후보들에게 각자 자신의 정치관과 가치관을 담은 애장품을 소개해달라고 하자, 각자 제시한 물건들이라고 한다. 일단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보자. 추억의 미팅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모든 선입견과 껍데기를 내려놓고 상대방의 소지품만을 보고 내 파트너를 골라보자

 

그 다음, 각 후보의 물건 소개 글을 읽어보자. 재미를 위해 후보를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정보는 임의적으로 삭제, 수정하였다.

 

 

1. 묵주반지

내 왼쪽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이 묵주반지는 내게 종교 이전에 어머니다. 20년 전 한창 바쁠 때 어머니가 주셨다. 성당에 잘 안 가니 복잡한 세상살이에 마음을 잃지 말라는 뜻이었을 게다. 부모님은 공산당에 가입하라는 압박을 견디지 못해,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난을 오셨다. 피난민 생활은 고생, 그 자체였다. 양말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부도를 맞자, 어머니는 노점 등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지만 가난은 떠날 줄을 몰랐다. 어느 날, OO역에 암표 장사가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어머니는 나를 앞장세우셨다. OO에서 OO역까지 그 먼 길을 갔는데, 어머니는 바라만 보셨다. 날이 저물고, 끼니도 거른 채 다시 그 먼 길을 걸어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훗날, 까닭을 여쭈니 그저 웃으셨다. 아마도 자식 앞에서 작은 법이라도 어기는 모습을 보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비록 가난했지만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보여주신 어머니. “어려울 때는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라.” “아무리 힘들어도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돌아보지 마라.” 나의 좌우명인 이 말은 어머니에게서 배운 것이다. 오늘도 나는 어머니의 묵주반지를 보며, 그 가르침을 새긴다.

 

2. 종이학 

선물 받은 종이학 유리병이다. 이 유리병에는 O 후보의 모습을 직접 그린 그림과 “1000마리 학들의 소원과 7777개 밝게 빛나는 별빛처럼 모든 사람의 희망이 돼주세요라는 작은 편지도 붙어 있다. 진심이 담긴 이 선물은 O 후보가 정치에 입문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청년들과 대화하고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올바른 정치의 필요성을 절감한 O 후보가 정치 진출을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였다. 주변에서도 삶을 바꿔달라, 정치를 바꿔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었다.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던 밤, O 후보는 종이학을 마주 보고 앉았다. 종이학을 건네며 청년들의 희망과 기대를 담아 전달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정치 부탁드립니다라고 당부하던 학생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O 후보는 바로 그날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도 이 종이학은 O 후보 의원실에 보관되어 있다. O 후보는 왜 정치를 하게 됐는지, 누구를 위해 어떤 정치를 해야 할지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이 선물을 항상 가까이 두고 있다.

 

 

 

3. 엄마 사진

내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애장품은 우리 엄마 사진이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분은 세종대왕도 아니고, 링컨 대통령이나 김구 선생도 아닌 우리 엄마이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무학을 넘어 문맹이다. 나를 키우기 위해 행상부터 시장 좌판까지 안 해본 고생이 없으셨다. 나는 지긋지긋한 가난이 싫어 육사를 가려고 했다. 그러나 내 학비를 마련하려고 고리채를 얻었다 갚지 못해 사채꾼에게 머리채를 잡힌 엄마의 수난을 보고 법관이 되겠다 결심하여 법대를 지망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세상에 법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지극히 착하고 평범한 분이다. 내가 정치에 뛰어든 이유가 두 가지인데, 첫째는 검사 시절 수많은 깡패와 권력자들을 구속시켰더니 가족까지 협박을 당하여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둘째는 우리 엄마처럼 가난하지만 착하고 순박한 보통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갖게 해주기 위해서다.

 

  4. 브로치

작년 봄날, 손편지 한 장을 받았다. 사무실을 나서야 한다는 재촉에도 브로치 한 쌍이 부록처럼 첨부된 그 편지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이은영님의 선물이다. 언제 처음 그를 만났던가. 201210월 의원실로 들어오던 일곱살배기 어린 소년을 기억한다. 휠체어를 타고 코와 목으로 연결된 산소통에 의지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휠체어를 밀던 소년의 엄마도 기침이 잦았다. “내 손으로 내 가족을 죽였어요.” 피해자들은 고통에 스러지는데, 가해자는 어디에도 없었다. 고통과 분노로 온몸이 떨렸다. 어떻게든 해결하겠다 다짐했다. 못된 기업을 혼내주고, 관리 감독을 게을리한 정부의 책임을 묻기 위해 피해자들은 처절하게 싸웠다. 나는 그저 그들을 도와줄 뿐이다. 피해자들의 싸움은 둥근 원과 같아서 시작은 있어도 결코 끝이 없다. 단 한 사람의 피해자까지 지키려 싸우는 이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정치인인 내가 빚을 갚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편에 서는 것. 그리고 억울한 이들을 양산하는 세상의 귀퉁이라도 바꿔내는 것. 이 브로치는 그 사명감을 상기시켜주는 열쇠다.

 

 

5. 김오랑 중령 감사패 

고 김오랑 중령은 1979년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을 맡고 있었다. 그해 1212일 이른바 ‘12·12 군사반란때 쿠데타군인 제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 중령이 공수부대원들을 동원해 정 사령관을 체포하려 했고, 김 중령은 홀로 쿠데타군에 맞서 교전을 벌이다 6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그 뒤 고인의 명예회복 요구가 있었지만 정부는 외면했다. 17·18대 국회에서도 고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결의안이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그러다 19대 국회에 이르러서 고 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 및 추모비 건립 촉구결의안이 다시 제출됐다. 이런 의로운 군인이 사후에라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면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통과되어야 하는 결의안이었다. 그래서 당시 국방부의 반대를 이겨내고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본회의에서 가결되어서야 정부는 2014년 보국훈장 추서를 결정했다. 이 일로 김오랑 기념사업회의 김준철 사무총장이 직접 국회로 찾아오셔서 준 감사패다. 이 패는 국가가 무엇인지, 우리 정치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항상 되새겨주기에 제게는 소중한 애장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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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선택과 글을 읽고 나서 한 선택이 달라졌는가, 혹은 원래 선택이 더욱 확고해졌는가. 이제 마지막으로 물건의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해보자.

 

주인은 1. 문재인 2. 안철수 3. 홍준표 4. 심상정 5. 유승민 이다. (원문 순서)
(사실은 사진의 배경색이 각 후보가 속해있는 당의 색깔과 거의 일치한다.)

 

 자신이 골랐던 물건의 주인이, 평소 자신이 지지하던 후보 혹은 괜찮다고 생각했던 후보와 일치하는가. 혹은 정반대이어서 깜짝 놀랐는가.
 
선택하지는 않았더라도 내 마음을 움직인 사연의 주인이 혹시 내가 평소에 싫어하던 후보이진 않았는가.

 물론 후보들이 선택한 애장품과 소개 글은, 지극히 유권자들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에서, 한 선택들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실제 본심이 아닐 수도 있고 다른 무엇보다도 더 가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름표를 떼고 보았을 때 마음이 동했다면/혹은 안 동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만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2, 어디까지나 재미로 하는 거다 재미로. 세상에 누가 소지품 고르기로 대통령을 뽑나, 미팅도 아니고. 그래서 과거 그 미팅들이 죄다 망했던 것 같기도.

 

 

[이순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뜨겁다…대선후보들의 애장품
이정아 기자
 원문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90692.html

원 기사에는 이재명 시장과 안희정 지사, 남경필 지사의 애장품도 소개되어 있으니 궁금하시면 참고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