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프리뷰-리뷰

[브이아이피] 신세계는 뽀록이었을까

김한우 2017. 9. 1. 19:43

브이아이피 V.I.P.

박훈정 (2017)

 

 

 

 

  "<신세계>를 기대하고 본다면 당황할 수도 있다." <브이아이피>로 돌아온 박훈정 감독의 당부다.

- 씨네 21 기사 발췌 -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8089)

 

<신세계>를 기대했더라도, 기대하지 않았더라도 <브이아이피>는 여러모로 당황스러운 영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반전에서부터 여성 피해자 묘사 장면까지.

신작 홍보를 하는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작품 <신세계>를 기대하지마라고 당부하는 감독의 심리는 무엇일까.

아마 스스로도 <브이아이피>가 여러모로 아쉽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브이아이피>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과 씨네 21의 여러 인터뷰를 읽고 글로 정리해보았다.

 

*스포 없습니다*

 

 

 

- 줄거리 (스포 X)

 

 때는 바야흐로 인사 발표 시즌. 국정원 요원 박재혁(장동건)에게도 상사의 승진 여부와 관련하여 압박이 들어온다.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려는 신호. 그렇게 큰 문제가 생긴다. 국정원의 기획으로 남한으로 넘어온 북한 고위층의 자제 김광일(이종석 a.k.a. V.I.P.). 김광일은 말도 안 되는 사이코패스다.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고, 그 과정을 즐기는 놈인데 특히 여자만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른다. 그동안 머물던 여러 나라에서 이런 짓거리를 벌여오던 김광일이 아무 문제없이 계속해서 이런 짓거리를 벌여올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김광일이 가지고 있는 특급 비밀 정보 때문. 그 정보 때문에 그를 지키려는 거대한 조직이 있고, 그 조직이 그를 비호한다.

 

 남한에서 역대급 연쇄 살인이 일어나자 경찰도 가만있을 수가 없다. 때마침 직장 내 위치가 불안하던 채이도(김명민)에게 기회가 온다. 그는 수사 방식이 폭력적이고 구시대적이라 이 때문에 징계를 받은 상태. 하지만 범인을 잡는 능력만큼은 수준급이라 기회를 얻게 된다. 채이도는 항상 입에 담배를 물고 있고, 실내 금연 따위는 그냥 쌩깔 뿐만 아니라, 후배들이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험한 욕을 날리고 쪼인트를 까버린다. 하자가 있는 캐릭터지만 발군의 집요함으로 금방 김광일을 잡는데 성공하는데. 그러나 경찰보다 높은 곳에 있는 거대한 조직의 힘 때문에 김광일에게 제대로 된 처벌을 내리지 못하고, 그런 상황을 답답해하고 있는 이도 앞에 북에서 내려온 전직 요원 리대범(박희순)이 나타나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 <신세계>를 만든 감독이 맞나 싶다.

 

 이 영화를 본 단 하나의 이유는 감독의 이름값이었다. <신세계> 박훈정. 한국 느와르 영화는 영화관에서 볼 것이 못 된다는 생각을 엎은 감독이다. 개봉 당시 엄청난 입소문에 영향을 받아 영화관에서 <신세계>를 관람하게 되었는데, 독특한 캐릭터, 특히 정청(황정민) 캐릭터에 반했고 대단한 액션씬, 특히 엘리베이터 씬에 열광했다. 그리고 박훈정 느와르는 무조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하지만 <브이아이피 V.I.P.>는, 이게 같은 감독이 만든 게 맞는 지 의심이 든 영화였다. 대충 들어도 복잡한 이야기를 이리 꼬고 저리 꼬아 여러 번 반전 장치를 만들지만 영화의 매력도가 오르지 않는다. 제일 큰 문제점은 매력적인 캐릭터의 부재. 정청 같은 독특한 캐릭터가 없었다. 채이도에게 그런 역할을 바란 것 같지만 부족했다. 캐릭터 자체도 크게 재미있지 않았을 뿐더러, 게다가 내세운 매력 포인트가 너무 구시대적 멋이었다. 감독이 그냥 인성이 쓰레기인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그 인성이 실제로 멋있다고 생각한 건지, 아무튼 두 가지 경우 모두 감독에게 실망을 갖기에 충분하다.

 

 

- 박훈정 감독 여혐(?) 논란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완성도보다 다른 이슈로 더 큰 비판을 받고 있다. 바로 영화 속 여성 피해자에 대한 묘사 논란. 감독이 극중 김광일이 여성을 무자비하게 유린하는 모습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 때문에, 젠더 감수성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영화를 보며 나 역시 필요 이상으로 길고 자세하게 보여준 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피해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주는데,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버티기 힘든 비쥬얼인데, 굳이 그걸 찍고 있던 카메라가 사진 속으로 들어가 영상으로 바뀌며 몇 분 동안 그 장면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정말 불필요한 장면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장면이 오락의 용도로 쓰인 것이 아니라 김광일이라는 캐릭터의 극악무도함을 보여주려는 영화의 장치로 쓰인 것 같아 '선택의 잘못'의 측면에서 비판할 생각이었으나, 최근 씨네21과 한 인터뷰에서 그의 ''을 듣고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Q. 피해자가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모습을 가해자의 시선으로 응시하는 장면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법하다.

[[소녀가 겪게 될 지옥 같은 고통이 그 장면을 통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소녀와 대비되는 광일의 악마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순간이 이 영화를 통틀어 그 장면 하나였기 때문에, 그 장면마저 없으면 광일이라는 캐릭터가 철부지 살인마처럼 보일 것 같았고 약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편집 과정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어느 정도 충격이 있겠지만 그걸 감수하고라도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내 예상보다 여성 관객이 보기에는 이 장면의 강도가 셌던 것 같다. 내가 보통의 다른 남자들보다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영화를 하면서 이런 부분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좀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

 

씨네21 발췌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88089

 

 

 고민했다고도 하고, 영화 캐릭터를 위해서 한 선택이라고 하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갔었다. 하지만 뒷문장이 뭔가 께름칙하다.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모자란 정도가 아니라 너무 무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반성하고 있는 건지, 애초에 그런 고민을 하긴 한 건지 헷갈린다. 읽으시는 분들이 각자 판단하시기를 바란다.

 

 

 

 

 

- <브이아이피>. 안 봐도 되는 영화.

 

 그가 만든 <신세계>는 분명 한국 영화의 수준을 한 단계 올린 작품이었고, 감독 스스로 본인이 재능이 있음을 제대로 증명한 영화였다.

<신세계>는 초심자의 행운, 뽀록이었을까. 여성이 주인공이라는 그의 다음 작품 <마녀>는 어떤 젠더 감수성을 보여줄까.

 

 <브이아이피 V.I.P.>가 이랬음에도 나는 감독의 다음 영화를 반드시 보려고 한다. <신세계>를 만든 감독이니까.

그러니 <브이아이피 V.I.P.>는 안 봐도 되는 영화라고 글을 마무리 하여도 너무 기분 나빠하지 않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