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서운해서 미안합니다. <아이캔스피크>

김한우 2017. 11. 8. 13:36

2017117일 방한한 트럼프 대통령이 청와대 국빈 만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와 포옹하고 있다.

이용수 할머니는 최근 개봉한 영화 <아이캔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으로

2007년 미국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나가 일본의 공식사과를 주장하며 당시의 실상을 증언한 바 있다.

 

 

 

 

아이캔스피크

 

감독 : 김현석

출연 : 나문희, 이제훈, 염혜란 등

 

 

 "옥분! 하우 아 유!"라는 외침은 옥분이 증언을 하고 있던 미국 의회에 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던 관객들에게도 큰 혼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대사였다. 그전까지 아무리 감정을 잘 쌓고 있었던 영화라도, 대사 한 방이면 전부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명제의 대표적 예로 기억될 정도의 대사였지만, <아이캔스피크>는 그런 예를 떠올릴 때만 소환되기에는 아까운 영화라고 생각한다. (대사가 아닌 장면으로는 <택시운전사>택시 추격전이 해당될 것 같다.)

 

 내가 <아이캔스피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여태껏 인간관계에서 내가 저질렀던 잘못을 되돌아보게 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그 대사가 나오기 전까지 나를 가장 (눈물을 참느라) 힘들게 했던 장면은 옥분과 진주댁이 화해하는 장면이었다. 몇 십 년 동안 품고 있던 아픈 상처를 마침내 세상에 털어놓은 옥분이 시장에 돌아오자 동네 주민들은 옥분을 외면한다.

 

 옥분은 이해할 수 없다. 왜들 이러지? 왜 방금 막 내 힘든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않지? 왜 다 나를 피하지? 혹시 나를 부정한 여자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 엄마가 그랬듯 너희도 나를 '걸림돌'이라고 생각하는 거니? 답답한 옥분은 자신을 힐긋힐긋 쳐다만 보는 진주댁을 쫓아가 직접 묻기에 이른다. 이때 진주댁의 입에서 나온 대사가 뜻밖이었다. "서운해서 그랬다." 지금껏 우리가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만데. 어떻게 지금까지 나에게 네 고민을 털어놓지 않을 수 있냐. 내가 네 이야기를 듣고 너를 나쁘게 생각할, 그런 사람으로 보이냐. 우리 사이가 그 정도밖에 안됐냐.

 

 지금 막 힘든 고백을 하고 온 사람에게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는 것. 어떤 이야기, 어떤 드라마, 어떤 영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아이캔스피크>는 갑자기 한 개인의 지극히 사소한 감정을 보여준다. 위안부 피해자 앞에서 '서운'하다니. 이게 지금 사람이 표출할 수 있는, 아니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맞는 것인가.

 

 이 대사가 나에게 와 닿은 이유는 부끄럽지만 그 감정이 나 역시 자주 느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로 진주댁처럼 누군가의 아픈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었고,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로 해야 하는 순간에도, 그래도 나와 상처를 미리 공유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에 섭섭함을 느꼈던 나약하고 이기적인 존재. 그러면서도 솔직하게 섭섭하다고 말하지 못했던 나. 그래서 그 섭섭함을 당당하게 옥분에게 털어놓고 이내 미안하다며 옥분을 꼭 안아주는 진주댁이 부럽고 멋있어 보였다. 나는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위로할 타이밍을 놓쳐 또 다른 상처를 줬을까. 너무, 미안,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