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의 영화이자, 진짜 인간에 대한 영화 <라쇼몽>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고 고백한 승려는 방금 막 위증을 한 것이 들통 난 나무꾼이 버려진 아이를 데려가려하자 소리친다. 뭐야. 이 핏덩이를 데리고 뭘 하려고! 비싼 단도를 팔아 돈을 챙기기 위해, 자신이 본 살인 사건을 거짓 묘사한 나무꾼 이였기에, 아이를 데려가려는 것 역시 나쁜 짓을 하려는 걸로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나무꾼은 사뭇 억울한 표정으로 집에 아이 여섯을 키운다며, 여섯을 키우나 일곱을 키우나 힘든 건 매한가지이니 데려가 키우려고 했다고 밝힌다. 그 말을 들은 승려는 부끄러워한다. 방금 막 거짓말 한 걸 들었고, 방금 막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은 그였지만, 이내 선량한 사람을 의심한 것을 반성한다. 그렇다면 승려는 정말로 인간에 대한 믿음을 버렸었던 것일까. 이렇게 금방 잘못을 뉘우치는 걸로 봤을 때,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고 말한 것 역시 거짓말이다. 승려 역시 이 순간 거짓말을 한다. <라쇼몽>은 거짓말의 영화이다. 인간은 거짓말하는 동물이라는 것이 내가 느낀 영화의 핵심이다.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까지 거짓말을 한다. 사람이 죽었는데 설마 거짓말을 할까. 사람이 죽었어도, 나 자신의 조그만 부끄러운 점을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우리도 최근 사람 몇 백이 돌아오지 못한 상황에도, 제 잘못을 숨기기 위해 끝까지 거짓말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았는가. 당신은 오늘 몇 번의 거짓말을 하였는가. 다른 사람의 행동의 결과만 대충 보고, 나쁜 사람이라 판단하지는 않았는가. <라쇼몽>에는 유난히 상대방을 큰 소리로 비웃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마치 인물들을 예단했던 관객들에게 일침을 하는 듯했다. 1951년 제 15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작품. <라쇼몽> 이야말로 진짜 인간에 대한 영화이다.
*한 때 애정했으나 이제는 재미가 없어 정으로 보고 있는 미드 워킹데드 시리즈에도, 승려처럼 늘 부끄러워하는 캐릭터가 하나 있다. 신부 가브리엘인데 공교롭게도 그 또한 종교인이다. 영화나 드라마나 종교인 캐릭터는 참 쓸모가 많은 것 같다.
라쇼몽 RASHOMON 1950
구로사와 아키라 Akira Kurosa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