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제다이> 더 이상 본 편의 뒷이야기로 남지 않겠다는 선언
<라스트 제다이> 더 이상 본 편의 뒷이야기로 남지 않겠다는 선언
**본 글에는 영화에 대한 스포가 포함되어있습니다**
소설처럼 이야기가 끝이 나도 캐릭터는 나이를 먹지 않았으면 좋겠건만, 영화는 배우의 얼굴이 곧 캐릭터이므로, 이야기의 공백 기간이 배우의 얼굴로 고스란히 다음 이야기에 반영된다. 그래서 스토리 전개상 6편 이후 30년 만에 다시 시작된 스타 워즈의 새 시리즈(7,8,9편)는, 제작자가 30년 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해리슨 포드가, 마크 해밀이, 그리고 캐리 피셔가 30년이란 세월 동안 나이가 들어버렸기 때문에 30년 뒤를 이야기한다. 그 사이의 이야기는 스타 워즈 고유의 인트로 자막 몇 줄로 요약될 뿐이다.
1956년생 배우 캐리 피셔는 작년(2016년),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비교적 이른 나이였지만 늦은 나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중요한 건 해리슨 포드와 마크 해밀은 각각 42년생, 51년생으로 미래를 예측하기 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스타 워즈의 제작자 입장에선 무엇보다 그들의 퇴장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그 퇴장은 영웅답게 멋있어야 했다. '영웅의 멋있는 퇴장', 그리고 '새 영웅의 등장'. 이 둘은 엄청난 팬덤을 갖고 있는 전설적인 시리즈를 다시 시작하기에 충분한 동력이었다.
그렇다면 7편 <깨어난 포스>는 그것에 성공했느냐. 골수팬들의 성에 차진 않았다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해보이니 제쳐두고, 대체로 평단과 일반 관객들에게는 호평을 받았었다. 그러나 평론가도 아니면서 일반 관객과 골수팬 사이에 속해 있는 나 역시, (나를 만족시키긴 아주 쉬움에도 불구하고)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이유는 위에 말한 두 가지 조건이 둘 다 미흡했기 때문이다.
두 가지 조건 중 '새 영웅의 등장'은, 애초에 3부작 중 첫 번째 편 만에 성사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쳐도, 무엇보다 ‘영웅의 퇴장’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한 솔로는 <깨어난 포스>에서, 전(前) 시리즈에서부터 이어져온 캐릭터 셋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며 전성기 때의 실력을 한껏 발휘하고 그의 시그니처 대사 "I have a bad feeling about this.(예감이 좋지 않아)"를 외치더니 한순간에 목숨을 잃는다. 다른 우주 생명체들에 비해 특별한 능력 하나 없는 인간의 몸으로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았던 그였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카일로 렌이 이를 통해 각성하여 주인공들을 큰 위험에 빠뜨리기라도 했다면 이 영웅의 갑작스런 죽음에 명분이라도 있었겠지만, 이후 포스를 제대로 다루지도 못하는 레이에게 어이없게 당하고 말며, 한 솔로는 죽음은 멋없고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라스트 제다이> 영웅들에게 예우를 갖추다.
희소식은 <라스트 제다이>가 한 솔로에 대한 뒤늦은 예우를 갖춘다는 것이다. 이번 편에선 스타 워즈의 시그니처 대사 "I have a bad feeling about this."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아마 이 대사를 가장 찰지게 뱉었던 그에게 이 대사를 헌정한 듯하다. 뿐만 아니라 포스를 통해 모든 걸 느꼈을 루크 스카이워커도 한 솔로의 죽음을 몰랐다는 냥 "Where is Han?(한은 어디에 있느냐)"이라고 말하며, 관객들에게 다시 한 번 잠시나마 그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을 마련해준다.
이렇듯 <라스트 제다이>는 하나의 신화를 만들어 준 영웅에게 제대로 된 리스펙을 전달하는 영화이다. 이 영화가 큰 울림을 주는 이유이다. 사실 그 의도는 제목에서부터 드러나 있었다. '멋있는 퇴장'이 주 내용인 3부작의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으로 보자면, 7편은 한 솔로의 퇴장, 8편은 루크 스카이워커의 퇴장을 그렸고, 아마 9편은 레아 공주의 퇴장이 주 내용일 것으로 예상된다. 캐릭터의 영화 속 분량 역시 이에 맞춰져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깨어난 포스>에선 한 솔로가 주로 극을 이끌었고, <라스트 제다이>는 루크 스카이워커의 역할이 돋보였다.(9편의 극을 이끌어야 할 레이 피셔의 부재가 제작자 입장에선 골치일 것이다.) 8편은 마지막 제다이로써 극의 중심 역할을 맡은 그에게, 그리고 이제 퇴장하는 그를 위해 제목을 바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제목에 걸맞게, 정말로 멋지게 스타 워즈 시리즈를 떠난다. 만약 7편의 제목이, 물론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한 솔로의 퇴장’을 은유한 제목이었다면 조금이라도 <깨어난 포스>에 대한 마음이 누그러졌을 수도 있었겠다. 한 솔로의 젊은 시절을 그린 스핀오프(솔로 스타 워즈 스토리(Solo: A Star Wars Story))가 내년 개봉한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새로운 전설로서의 자격을 갖추는데 성공한 <라스트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최후의 제다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붙여준 <라스트 제다이>는, 새로운 제다이 레이를 선보인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그녀의 출생의 비밀을 감추어 9편을 기대하게 만드는 영리한 전략까지 활용한다. 레이에 관해서도 팬들의 평은 갈린다. 좋게 보지 않는 팬들은 그녀가 너무 '먼치킨' 캐릭터라고 한다. 외계/드로이드 언어, 우주선 조종/수리, 전투 능력, 포스의 사용 등 못하는 게 없기에 얻은 평가로 보인다. 이는 설정 상의 문제로 보이는데 그와 별개로 캐릭터 자체에 매력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깨어난 포스>가 개봉했을 당시에도 무엇보다 신인인 데이지 리들리 배우의 캐스팅 자체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은 없었다.
게다가 이번 <라스트 제다이>에서는 캐릭터 설정에 대한 보완으로 보이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레이는 루크 스카이워커와의 첫 번째 수업 만에 '다크 사이드'를 들여다보게 되는데, 이는 감독이 대놓고 레이의 '먼치킨'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의도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 본 루크 스카이워커가 본인도 이 상황을 못 믿겠다는 듯 다시 한 번 친절하게 그 사실을 대사로 뱉어주기 때문이다. 감독이 이를 굳이 짚고 넘어가는 것은 레이의 설정이 '밸런스 파괴'가 아닌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암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고, 아마 다음 편에서 그 비밀이 드러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 비밀이 뭔지와 상관없이, 레이는 팬들로부터 앞으로 이어질 스타 워즈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자격을 이미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 솔로의 대체자로 보이는 핀은 아쉬웠다. 물론 <깨어난 포스>때 보다 더 큰 매력을 뽐내기는 한다. 핀의 가장 임팩트 있는 장면은 동시에 꽤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핀이 <깨어난 포스>에서부터 자신을 이름 대신 고유 식별 번호(FN-2187)로만 부르던 캡틴 파스마와 다시 맞닥뜨리는 장면인데, 핀은 본인을 번호로만 부르던 존재를 직접 처치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마침내 파스마를 해치운 뒤 멋있는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죽음을 각오하며 적의 무기를 향해 가미가제를 시도하는 모습을 보여줘도 아직 핀에게 온전히 마음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정도 정이 들긴 들었으나 아직 한 솔로의 아우라를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라스트 제다이>는 전편의 많은 약점들을 보완한다. 악당 카일로 렌이 전 시리즈의 다스 베이더와 비교해서 매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카일로 렌이 베이더를 따라 쓰던 가면을 손수 부숴버리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가면을 부수는 장면이 상징하듯 이전 시리즈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는 노력이 눈에 띄는데, 렌을 조종하던 수프림 리더 스노크를 너무나 허무하게 죽여 버리는 것과, 반란군을 거의 궤멸 직전까지 밀어 붙이는 것 등이 그러하다. 새로운 전설을 시작하기 위해 어중간한 청산이 아닌 제로베이스에 가까운 적폐 아닌 적폐청산을 한 <라스트 제다이>는, 무엇보다 기존 시리즈의 '뒷이야기'라는 딱지를 떼는데 집중했고, 이에 거의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칭찬 받아 마땅한 영화이지만, <라스트 제다이>는 그런 영화 외적인 요소를 제외하더라도 매력적이고 완성도 있는 작품인 것 또한 사실이다. 다음 편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더라도, 행여나 시리즈 전체를 망치는 퀄리티의 작품을 선보인다 하더라도, <라스트 제다이> 자체는 팬들에게 시리즈 명작으로 손꼽힐 만한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이는 내가 쉽게 만족하는 사람인 것과는 별개인 감상임을 밝힌다.
Destory & Rebuild. 한 솔로의 후계자만 찾으면 될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