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1일. 스티븐스필버그/우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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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3/28) 개봉을 앞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레디 플레이어 원>(Ready Player One)영접을 대비하여, 감독님의 필모그래피를 훑는다. 이는 대감독에 대한 예의이자, 또한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고 글을 쓰기 위해, 스스로 자격을 갖춰 보려는 작은 노력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난 이 대감독의 작품을 몇 편이나 봤을까. 세어보니 영화 글을 쓰려는 사람으로서 한없이 겸손해지게 된다. 최근 <더 포스트>를 봤고, 몇 개월 전 <마이 리틀 자이언트>(The BFG)를 봤었다. <스파이 브릿지>는 개봉 당시 봤으나 한 번 더 봐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뮌헨>도 어릴 적에 본 거라 거의 보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캐치 미 이프 유 캔> 역시 비슷한 케이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어릴 때 극장에서 봤고, 기억에 남을 정도로 정말 재밌게 본 SF 영화이고, 더 어릴 적 비디오로 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쥬라기 공원> 정도가 본 영화의 전부인 것 같다. 이중에서 <더 포스트>와 <BFG>를 제외하곤 거의 다 다시 한 번 봐야 할 것 같다. 역시 볼 영화는 너무 많고, 갈 길이 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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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오늘은 <우주 전쟁>(War Of The Worlds, 2005)을 봤다. 너무나 익숙한 모건 프리먼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영화. 그 근엄한 목소리로 닝겐들에게 뜬금없이 경고를 한다. 인간보다 더 지적인 존재가 지구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가 각자의 삶을 걱정하는 동안, 그들은 우리를 관찰했을 뿐만 아니라, 연구(study)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인류가 지구를 자신의 것이라 확신하고 자만하고 있을 때, 그 지적 존재들은 우리를 envious eyes로 보고 있었다고 말해준다. envy. envy가 거슬린다. 영어권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envy를 정확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본 자막에는 ‘질투’의 의미로 쓰여 있었으나, envy의 사전적 의미는 ‘부러움’ 혹은 ‘선망’이다. 그리고 분명 ‘jealous’라는 단어가 질투를 표현하는 확실한 단어이니, 이 영화의 envious eyes는 지적 존재들이 인간들을 부러워했다, 또는 선망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그래서 정리하자면, 이 존재들은 인간을 부러워했다. 왜? 인간들이 자신들이 노력한 것 이상의 호화로움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인간들이 지구라는 아름다운 행성을 자기 것인 양 생각하며 공짜로 살고 있는 게 배가 아파서. 이렇게 쓰고 나니 ‘부럽다’와 ‘질투가 난다’는 동의어일 수도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오랫동안 인간을 관찰하고, 연구한 뒤, 지금 침공하면 성공하겠다는 결과가 도출되자(이 부분은 상상), 마침내 지구를 침공한다. 얼마나 오랫동안 연구를 했을까. 나레이션이 이들이 인간보다 더 지적인 존재라고 말한 것이 진짜라면, 이들은 지적인 것뿐만 아니라 치밀하기까지 하다고 봐야한다. 아니면 이 치밀함 역시도 ‘더 우월한 지적 능력’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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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특히 결말에 대해 말이 많았다. 압도적인 파워로 인간들을 압살하던 그들은 영화가 끝날 시간이 되자 갑자기 무기력하게 쓰러진다. 이건 비유가 아니다. ‘영화가 끝날 시간이 돼서’ 밖에 그럴듯한 이유가 없다. 그들이 패한 이유에 대해 모건 프리먼이 다시 한 번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지만, 딱히 설득이 되지 않는다. 많은 관객들이 이 결말에 대해 분노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진짜 말이 안 된다. 이들이 얼마나 지적인 존재인데. 치밀한 연구를 해서 몇 천 년 전에 이미 땅에다 기계를 묻어놓은 그들인데. 고작 미생물 때문에 실패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다. 그래서 이렇게 믿고 싶은 거다. 영화가 끝날 때가 돼서 스스로 퇴장한 거다. 그게 진짜 영리한 거고, 그게 진짜 지적인 거다. 떠날 때를 아는 것. 퇴장해야 할 때를 아는 것. 이정도면 충분히 인간들에게 경각심을 줬다고 판단한 그들은, 딱 그만큼만 하고 물러선다. 이 경험을 통해서, 그들보다는 덜 지적이지만, 보통 인간들보다는 조금 더 지적인 인간들은, 그들의 큰 뜻을 알아챌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겸손한 삶을 살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다시 원래 그대로의 삶을 살 것이다. 영화에서 나레이터의 말은 절대적이다. 그 절대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인지 아닌지, 영화 밖의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역시 우리가 선택해주기를 바라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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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도 결말이지만 과정 역시 너무 좋은 영화이다. 가끔 축구를 볼 때, 골이 들어가지 않았더라도 슛까지 만들어가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면 ‘골이 안 들어갔어도 괜찮다’는 순간을 본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골까지 들어간 케이스지만, 아무튼 과정 역시 완벽한 영화였다. 괜히 스필버그가 아니구나 싶은 장면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톰 크루즈와 아들과 딸이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면이다. 롱테이크로 찍었는데 롱테이크인 느낌이 안 드는 지경의 장면이다. 카메라는 차 주위를 빙글 빙글 돌고, 적당한 때에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가면 그들은 대사를 시작한다. 이 뒤에 만들어진 영화이지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2006)의 롱테이크 씬들이 떠올랐다. 프리프로덕션 과정까지 따지면 거의 동시대에 만들어진 작품이니 알폰소 쿠아론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까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영화를 볼 때, 촬영 테크닉에 딱히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편인데, 이와 같은 롱테이크 장면들을 보면 진짜 가산점을 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