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4월 16일. 2046/왕가위/장만옥

김한우 2018. 4. 17. 18:46

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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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일을 쉬기로 했다. 인간적으로 하루는 쉬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솔직히 말하면 조금 의지가 약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예 포기하지는 않겠다. 하루 쉬는 것도 아예 손을 놓지 않기 위함이다. 그리고 뭔가 경제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진짜 매일 매일 쓰는 것도 불가능해질 수 있으니까. 할 수 있을 때 많이 보고, 많이 써놓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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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보다. <2046>. 2004년 작품이다. 요즘 보는 작품의 선택이 너무 뒤죽박죽, 오락가락인게 아쉽다. 나도 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한 감독의 영화만 쭉 보는 게 별로 안 끌린다. 분명 이어보아야 감상에 도움이 될 터인데.. 집중력이 약하다. 특히 왕가위 감독의 영화의 경우 그게 더 심하다. 많은 작품들이 서로 이어져있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왕가위의 많은 작품들이 (<아비정전>이 미완성인 작품이라는 점에서) <아비정전>의 변주, 혹은 뒷이야기라는 평을 받는데, <2046>의 경우 <화양연화>(2000)의 뒷이야기라는 분석이 많다. ‘2046’이라는 제목 자체가 <화양연화>에서 따온 제목이다. <화양연화>에서 양조위와 장만옥이 사랑을 나눈 방 번호가 바로 2046이었다. 그리고 양조위는 <2046>에서 계속 과거의 사랑을 떠올리고,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그 내용들이 묘하게 <화양연화>의 이야기와 겹친다. 게다가 실제로 장만옥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런 다양한 겹치는 장면들이 있는데, 왕가위 감독은 <2046><화양연화>의 후속편이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딱히 그게 중요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행여나 왕가위 감독이 진짜로 이를 후속작으로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해도, 감독 입장에선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2046>이라는 하나의 독립된 세계가 <화양연화>와 연관되어 읽히는 게 그리 달갑진 않았을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작품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이 온전히 스포트라이트 받았으면 좋겠는데, 자꾸 4년 전 작품을 가져와서 비교하고 분석하는 건, 마치 지금 작품보다 전 작품이 더 좋았다고, 다르게 표현하자면 ‘4년 동안 발전이 없었다고.’ 평가 받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그래서 단호히 싹을 자른 것이리라. 나는 분명 <2046><화양연화>의 뒷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는 영화의 분석에 딱히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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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46>은 쉬운 영화는 아니다. 두 개의 이야기가 요즘의 나처럼 뒤죽박죽 섞여 진행된다. 영화의 시점 현재에 양조위가 세 여자를 만나는 이야기가 진행되며, 동시에 그의 소설 속 2046년이 진행된다. 그러면서 양조위가 세 여자를 만나는 현재의 경험이 그의 소설 속 이야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소설 속 ‘2046’이라는 세계는 블랙홀? 혹은 천국? 같은 곳이라고 느껴졌다. ‘2046은 모든 게 영원한 곳이다.’라고 한다. 모든 것이 영원하니, 그러므로 기억도 영원할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한 번 그곳에 간 사람은 절대 돌아오지 못한다. 내가 생각하는 2046은 곧 화양연화의 동의어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경험한 는 절대 원래의 로 돌아오지 못한다. 한 번 그 아름다움을 맛봤으니, 다시 어떤 아름다움을 만나도 그 때 그것을 첫경험했던 황홀한 그 기분을 느끼지 못한다. 한 번 그 사랑을 느낀 사람들의 숙명이다. 절대 순수했던 그때의 나로 돌아오지 못한다. 양조위가 장만옥과 진정한 사랑을 느낀 그 순간. 그 장소인 ‘2046’. 화양연화’. 그러므로 2046은 화양연화와 동의어이다. 최근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박수홍 씨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 번 정말 진정한 사랑을 했고,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그는 다시는 사랑을 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며 산다고 한다. 박수홍 씨에게 <화양연화><2046>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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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를 보고 또 한 번 느꼈다. 장만옥 정말 예쁘다. 잠깐 출연하는 데도 단번에 내 시선을 앗아갔다. 또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영화 소설 속 2046 세계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왕페이가 네 비밀을 들어주겠다며, 내가 나무가 되어 줄게요, 하면서 손가락으로 만든 구멍을 입으로 가져가는 장면. 그 구멍에 비밀을 말하려면 입을 갖다 대야하니, 자연스럽게 키스로 이어지는 것이다. 너무 로맨틱. 언젠가 응용해보고 싶기도 했다. 언제 할 수 있을까. 2046년이 오기 전에는 시도해볼까 생각이라도 해볼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