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정성일이 사랑하는, 정성일의 인생 영화 101편

김한우 2018. 4. 22.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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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뤽 고다르 관련 글을 찾아보다가, 당연히 고다르 무새인 정성일 평론가님의 글을 검색했다. 그러다 우연히 다른 글을 보게 되었다. TTL Cinema Club이라는, 무려 TTL이라는 추억의 단어를 달고 있는 곳, 이게 온라인인지 잡지인지도 모르겠는 그런 곳에, 200211월에 쓰신 글. ‘내 인생의 영화 101이라는 글이었다. 그러니까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벌어졌을 때 이미 이런 글을 쓰고 계셨던 거다. 내가 중국에서 중학교 시절을 보낼 때. 아 난 그때 무슨 영화를 봤었는지, 단 한 편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성일 평론가님의 나이를 따져보니, 1959년생인 그는 2002년에 벌써 40대셨다. 2018년 지금 벌써 환갑이신 거다. 아무튼 그 글은 이렇게 시작됐다. ‘내가 오랜 동안 미루었던 글 중의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한 영화를 백 편 뽑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건 나를 기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를 백 편 뽑는 일을 미루었다고 표현했다. 2002년에 그의 나이가 마흔 넷이니, 미루었다는 표현은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이미 적어도 수 백 편의 영화 관련 글을 썼었을 그다. 그런 그가 200211, 무슨 일에서인지 미루었던 그 숙제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의 인생에 의미 있는 영화 리스트를 작성하는 것은 그에 말마따나 자신의 인생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록한다는 것은 돌아보고 정리하는 행위를 바탕으로 한다. 그는 마흔 넷에, 갑자기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그 이유에 대해선 딱히 글에 언급하진 않았다. 그가 자주 언급하는 비평의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해서 였을까. 아니면 그냥 단순히 쓸 주제가 고갈되었기 때문일까. 그 글을 쓰고 난 다음 달에는 바로 그 때 개봉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 대한 글을 쓴 것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자신의 인생 영화 리스트 발표를 시작하기 전, 영국 영화잡지 사이트&사운드가 전 세계 영화평론가들과 영화감독들에게 앙케이트를 돌린 뒤 뽑은 영화사상 최고의 영화 열 편리스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열심히 이야기하다가 그 단락은 이렇게 끝난다. ‘사실 이런 순위를 놓고 무슨 영화가 빠지고, 무슨 영화가 왜 들어갔느냐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왜냐하면 결국 영화란 그 사람의 취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마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리스트를 평가하지 마라. 이건 그냥 내 취향이다.”

 

 하지만 악명 높은 한 영화 평론가의 인생 영화 리스트를 두고, 이를 그냥 가만히 재미로 보고 있기만 하는 것은 힘든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의 리스트가 궁금해졌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에 뽑은 리스트이지만, 아마 지금 다시 쓰면 꽤 많은 물갈이가 이루어졌을 그런 리스트이지만 너무 궁금했다. 그 리스트에 오른 영화들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50% 이상은 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너무나 당연히 장 뤽 고다르의 영화였다. <미치광이 삐에로>(1965). ‘나에게 영화는 결국 여기서 시작한다.’ 이 영화를 소개하는 첫문장이었다. 이 문장을 적기 위해 그 긴 서문을 돌고 돌아왔지 않았을까. 그는 그 긴 서문 중에 자신의 리스트의 원칙을 말하며, 이 리스트의 순서는 절대 순위와는 상관이 없다고 말했지만, 첫 번째 영화만큼은 왠지 순서와 순위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 멋대로 해라>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보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오늘이었지만, 이 첫 번째 영화를 본 순간, 이를 좀 미뤄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오늘 내가 그에게 받은 숙제이다.

 

 두 번째 영화는 데이비드 워크 그리피스 감독의 <흩어진 꽃잎>(1991), 세 번째 영화는 바리스 바르녜뜨 감독의 <모자상자를 든 소녀>(1927), 네 번째 영화는 오가와 신스케 감독의 산리츠카-나리타 항쟁 7부작(1968~1977), 다섯 번째 영화는 셀지오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1966), 여섯 번째 영화는 세르게이 미카이로비치 에이젠쉬타인 감독의 <십월>(1927)이었다. 여기까지만 쓴 것은 귀찮아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가 여섯 개만 쓰고 글을 마쳤기 때문이다. 백 한 편을 소개하는 글에 고작 여섯 편만 소개하고 말다니. 게다가 두 번째부터 여섯 번째의 영화는 <석양의 무법자>를 제외하곤 영화의 제목도, 심지어 감독의 이름마저도 처음 들어 본 것들이었다.

 

 두 번째 101편의 영화이야기는 무려 석 달이 지나서야 이어졌다. 아직 95편의 영화가 남았는데. 갈 길이 먼데. 이 느긋한 마흔 네 살의 평론가는 이번에도 역시 잡담(?)으로 글을 시작했다. ‘나는 어린 시절 세상의 영화를 모두 보고 싶었다.’ 마흔 네 살 아저씨의 귀여운 고백. 그 이야기는 이런 내용이었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보고 싶었던 중학교 이학년생의 그는 자신만의 비밀 공책에 보고 싶은 영화, 그 영화가 보고 싶은 이유 등을 적었고, 무작정 적은 것이 아니라 매년 설날 새로 일백 편의 리스트를 적었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일 년 사이 거기에 쓰인 영화들의 삼분의 일 이상을 하여튼보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무언가를 정말 간절하게 소망하면 그게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정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는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성을 기울여서 그 일을 하려고 안간힘을 기울인다. 그러면 세상으로부터 답이 온다. 하여튼 답이 온다.’ 나는 정성일 평론가의 글을 읽으며 이렇게 가끔씩 정말 뜬금없이 받게 되는 위로가 좀 좋다.

 

 이윽고 리스트가 이어진다. 7. 벨라 타르 감독의 <사탄 탱고>(1991~1993). 이 감독의 영화는 한 편 봤다. <토리노의 말>(2011). 이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연극영화과를 부전공으로 한 학기 들으며, 연영과 건물 게시판에 붙어있던 포스터를 본 것이 계기였다. 그 포스터에 매료됐다. 영화한다고 하면 꼭 봐야하는 영화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은 그 영화에 대한 글이 아니니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한다. 8. 프릿츠 랑 감독의 <M>(1931). 처음 들어보는 감독이다. 9. 드디어 본 영화가 나왔다. 데이빗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 10. 익숙한 감독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오명>(1946), 11. 다시 처음 들어보는 감독. 글라우베 로샤 감독의 <죽음의 안토니오>(1969). 12.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부운>(1955). 그리고 끝. 두 번째 글 역시 여섯 편만 소개하고 끝이 났다. 서둘러 다음 글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끝이었다. 다음 글이 없었다. 아니 더 이상 TTL Cinema Club이란 정체불명의 매체에서 쓴 글 자체가 없었다. 마지막 글은 ‘2002년을 생각한다(1)’라는 또 다른 시리즈를 의미하는 숫자가 달린 글이었고, 더 이상 다음 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2002년을 생각한다(2)’라는 글조차 없었다. 2003년이 되자마자 그는 2002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부질없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그래서 쓰기로 한 글을 쓰지 않은 죄로 TTL Cinema Club이란 곳으로부터 거절을 당한 것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있었던 갈등이 터지기라도 한 것일까? 아니 TTL Cinema Club이란 곳 자체가 없어져 버린 걸까? 가만 있자, TTL이란 올드한 이름이 자취를 감췄던 게 언제였더라. 아니 설령 그렇다해도, 본인이 시작한 이 거창한 프로젝트는 다른 곳에서라도, 쓸 곳이 없다면 하다못해 블로그라고 개설해서 마무리 지어야하는 것이 아닌가? 이 무책임한 평론가. 아니 속단하긴 이르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났지만, 혹시 모른다. 이 멋있는 평론가는 어쩌면 그냥 여기서 마무리 짓는 게, 미완인 채로 그 리스트를 남겨놓는 것이 옳다고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 리스트가 완성되어버리면 그의 말대로 그의 인생 역시 매듭지어지는 것일 수도 있기에. 아 아무리 그래도 12편은 너무하다. 본인의 나이만큼 적어도 마흔 편 정도는 적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참 여러모로 대단한 평론가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