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 오아시스(1)/오아시스와 셰이프오브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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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 관람. 와 더 좋다. <박하사탕>을 보고 단연코 이 작품이 이창동 감독의 최고 작품이겠구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오아시스>가 더 좋았다. 아니 좀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본 뒤 다시 결정해야겠지만, 보자마자의 기분은 <오아시스>가 진하다. <박하사탕>은 내 정치 취향까지 딱 맞춘 작품이었지만, 그럼에도 <오아시스>가 더 내 마음을 위로해줬다. 역시 모든 것들 위에 ‘사랑’이 있는 것 같다. 아닌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겐 사랑이 가장 위에 있다. Love above all. All you need is love. <오아시스>는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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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와 <셰이프 오브 워터>
<오아시스>를 보는 내내 최근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쓴 <셰이프 오브 워터>가 떠올라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건 비슷한 수준이 아니라, 기예르모 델 토로가 <오아시스>를 보고 카피를 한 것 같다는 확신이 들 정도다. 우선 기본 설정이 워낙 비슷해서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후반부 공주(문소리)가 일어나 ‘내가 만일’을 불렀을 때 무릎을 탁 쳤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입으로 ‘이 섀끼 딱 걸렸어’라고 했다. 엘라이자가(샐리 호킨스)가 크리처에게 ‘You’ll Never Know’를 불러줬던 장면이랑 똑.같.은. 거다. 게다가 그 장면은 <라라 랜드>까지 연상시켰던 장면으로, 기예르모 델 토로는 이거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솔직히. 진짜 작품상은 <쓰리 빌보드>가 받았어야 했다. ‘내가 만일’과 ‘You’ll Never Know’는 가사 내용도 비슷하다. ‘내가 만일’의 후렴구 가사 ‘사랑하는 나의 사람아 너는 아니, 워- 이런 내 마음을’과 ‘You’ll never know how much I miss you’는 의역하면 거의 같은 의미다. 기예르모 델 토로와 <셰이프 오브 워터>는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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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와 문소리
<박하사탕>을 먼저 보고 이 영화를 보길 잘했다. <박하사탕>과 <오아시스>는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의 영화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작품에서 둘이 사랑했던 사이라는 점, 그리고 둘 다 <박하사탕>을 찍기 전 무명 배우였고 그 영화를 통해 어느 정도 명성을 얻은 뒤 다시 <오아시스>에서 만났다는 점이 <오아시스>의 둘을 특별하게 보도록 만든 것 같다. 사실 이 특별함은 두 배우한테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내 머릿속에 ‘어디 <박하사탕>때보다 더 잘해봐’라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것 같았다. 한 번 흥했던 조합으로 또 우려먹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 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성공해버린 것 같다. 다 떠나서 이미 문소리 배우의 첫 등장만으로 끝나버렸다. 이미 어릴 적 이 영화의 명성에 대해, 아니 정확히는 뇌성마비장애인 연기로 베니스영화제의 연기상(정확히는 신인배우상)을 거머쥔 배우 문소리의 연기에 대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 그 전설을 알면서도 지금까지 이 영화를 안 보고 버틴 나는, 말 그대로 똥고집쟁이 인간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그런 엄청난 기대를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문소리 배우의 연기는 어마어마했다. 진짜 첫 등장 보고 깜짝 놀랐다. 연기가 아닌 것 같았다. 진짜 같았다. 설경구 배우도 문소리 옆에서 어마어마한 연기를 해내고 있었지만, 정말 언제라도 무슨 일이든 저지를 것만 같은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내고 있었지만, 문소리 배우의 임팩트를 넘어설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순간은, 문소리 배우가 ‘그’ 연기를 하지 않고 있을 때였다. 나는 이 장면을 보고, 영화를 잠깐 멈추어 감탄사를 내뱉을 시간을 가졌을 정도로 이 장면이 좋았다. 바로 지하철에서 공주가 갑자기 비장애인인 모습으로 설경구 옆에 섰던 순간이다. 이와 같은 ‘인물의 상상 장면’은 다른 영화들에서 본 적이 없는 장면은 아니었으나, 문소리 배우가 이를 연기하자 <오아시스>는 다른 영화들과 차원이 다른 영화가 되어 내게 다가왔다. 이 장면만으로도 별 다섯 개다. 요즘 별을 너무 남발하는 것 같아 조금 그렇지만, <박하사탕>과 <오아시스>라면 상관없다. <버닝>에 대한 기대감이 날로 커져가고 있어 큰일이다. <오아시스> 얘기는 내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