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5월 18일. 절대적 역겨움/이명세/사랑에 대한 모든 것(1)

김한우 2018. 5. 19. 17:34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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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일기를 다시 읽다가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모든 사람들이 역겨워하는 절대적 역겨움이 존재할까. 어제 일기에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안티크라이스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의 자극적인 표현보다 상징성에 주목을 했다고 썼었고,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현의 자극성이 영화의 질을(소위 말하는 별점) 떨어뜨린다고 썼었다. 하지만 만약 이동진이 생각하는 역겨움의 기준선이 나보다 높다면? 다시 말해 이동진이 느끼기에 <안티크라이스트>의 표현들이 영화 감상에 걸리적거리지 않았다면? 그렇게 된다면 이동진의 평에 좀 더 신빙성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궁금하다. 과연 <안티크라이스트>는 모든 사람들에게 역겨웠는가. 모든 사람들에게 역겨운 것, 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 라스 폰 트리에는 영화를 통해 이것을 도전해보고 싶었던 걸까. 영화로 절대 추()’를 표현하고 싶었을까. 그의 다른 영화를 봐야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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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21 1155호를 이제야 봤다. 이명세 감독의 인터뷰가 있었다. 서울환경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을 맡게 된 기념으로 하게 된 인터뷰였다.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부끄럽게도 지난해 <전체관람가>를 통해서였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알고 있었지만(보진 못했다) 감독의 이름을 몰랐던 것이다. <전체관람가> 얘기는 따로 할 말이 많은 프로그램인데 아무튼 이명세 감독의 단편 영화가 꽤나 인상 깊었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인상적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인터뷰에서도 이에 관련한 질문이 나왔다. 방송 출연을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고민을 했냐는 질문에 이명세 감독은 고민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인용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지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는 안다.’ 정확히는 인상적인 게 아니라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는 말 같았다. 최근 아니 근 몇 년 동안 너무나 지겹도록 많이 받았던 질문. 그리고 받을 때마다 마음이 답답해지는 질문. 숨이 턱 막히는 질문. 바로 니가 하고 싶은 게 뭔데라는 질문.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괴로웠던 이유는, 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게 내가 생각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내가 열정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뭔가를 원하고 뭔가 하고 싶은 마음이 내 머릿속에는 있지만,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겠다.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 거고, 원하지 않는 것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누군가 나에게 또 비슷한 질문을 한다면 이제 당당히 답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감독의 말을 인용하며 있어 보이게 된다는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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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4일에 보고 싶다고 썼던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을 봤다. 이 영화는 제목을 쓰는 것이 괴롭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판 영화 제목을 쓰는 것이 괴롭다. 영어 원제는 <The Theory of Everything>인데, 직역하면 모든 것에 관한 이론이라는 뜻으로 과학 향기가 물씬 나는 영화인 느낌을 주는 반면,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영화를 단숨에 사랑 영화로 바꾸어버린다.

 

 그렇지만 이 영화가 사랑 영화가 아닌 것은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사랑 영화가 맞다. 솔직히 간지를 떠나서 진짜 어느 제목이 더 영화를 잘 표현했냐고 따진다면, 한국판 제목이 승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올해 타계한 그 유명한 스티븐 호킹의 전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이긴 하지만 감독이 이를 장르화해버린 탓이다. ‘루게릭병에 걸린 한 인간의 인간 성공 이야기, 그리고 그 곁에 있었던 숨은 조력자인 아내’. 순식간에 많은 비슷한 영화들이 떠오른다. 인정하기 싫지만 <내 사랑 내 곁에>가 가장 먼저 떠올랐고, 내가 사랑하는 대너리스 타가리옌 마더 오브 드뢔건 에밀리아 클라크가 너무나 사랑스럽게 나오는 <미 비포 유>, 그리고 에디 레드메인 아내의 희생(혹은 고생)이라는 점에서 <대니쉬 걸>이 떠올랐다. 아 사실 <대니쉬 걸>의 알리시아 비칸데르를 에밀리아 클라크보다 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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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고 다시 한 번 에디 레드메인이란 배우를 사랑하게 되었다. <대니쉬 걸>의 트랜스젠더 연기까지 더하여, 가히 특수 연기 장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난 <오아시스>의 문소리 배우를 두고 대단하다고 썼었는데, 그것과 우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연기였다. 생전의 스티븐 호킹의 모습을 잘 모르지만, 그럼에도 진짜 같았다. 하지만 이제 에디의 평범한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신비한 동물 사전>의 뉴트 스캐맨더의 경우도 엄밀히 따지면 평범한 캐릭터는 아니다. 일단 마법사에 아웃사이더다. 이미 어떤 배우들은 평생 한 번 겪어보지 못할 정도의 다양한 인물을 연기한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이 배우의 더 다양한 연기를 보고 싶다. 내일 볼 <버닝>을 위해 이정도만 하고 머리를 비워두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