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5월 19일. 사랑에 대한 모든 것(2)/버닝/헛간을 태우다

김한우 2018. 5. 21. 00:03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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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못 다한 이야기. 영화 <The Theory of Everything>(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스티븐 호킹이 영국 여왕으로부터 명예 훈작을 받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장면은 정확히는 엔딩이 아닌 오프닝 장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이 영화는 명예 훈작을 받은 이 시점의 화자가 스티븐 호킹이 어떻게 명예 훈작을 받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는 영화이다. 마치 우리가 그걸 궁금해 했다는 듯이. 그러나 나는 그게 딱히 궁금하지 않았다. ‘명예 훈작을 받은 것이 스티븐 호킹이라는 사람의 인생에서 이렇게 조명 받아야 할 클라이막스인가. 고작 명예 훈작을 받은 것이 스티븐 호킹이라는 영화의 결말인가. 물론 명예 훈작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닐 테지만, 이 스티븐 호킹이라는 위대한 인물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전기 영화로서 이 결말은 상당히 아쉽다. 하지만 이 영화를 전기 영화가 아닌, 어제 반농담조로 말했던 사랑 영화로 본다면 결말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사랑 영화로써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의 결말. 나는 스티븐 호킹이 명예 훈작을 받았다는 것보다 제인 호킹이 명예 훈작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눈에 들어왔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스티븐 호킹이라는 인물을 만든 것은 스티븐 호킹 자신보다 제인 호킹의 공이 더 컸다는, 아니 적어도 동등하다는 것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결말은 스티븐 호킹이 명예 훈작을 받았다가 아니라 제인 호킹은 명예 훈작을 받지 못했다를 얘기하고 있는 결말이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스티븐 호킹의 전기 영화가 아니라, 스티븐 호킹과 제인 와일드의 전기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제인 호킹이 조나단과 바람 아닌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넣은 것 또한 그런 것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조명 받지 못한 것을 조명해주는 영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꽤 좋은 영화이다. 홈즈에겐 왓슨, 배트맨에게는 알프레드가 있었고 스티븐 호킹에게는 제인 와일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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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닝>을 봤다. 좋았던 점도 있고 별로인 점도 있고.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평이 꽤 갈릴 영화일 것 같다. <버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책을 읽진 못했지만 검색 조금 해본 결과, 원작에서 모티프 정도를 갖고 온 것으로 보인다. ‘헛간을 태우다에서 태우다’(버닝)만 가져온 정도. 책과 비교해서 인물의 상세 정보가 꽤 다르고, 배경들이 상당히, 어찌 보면 당연히 한국화 되어있으며, <버닝>에선 헛간 대신 비닐하우스를 태운다. 이 비닐하우스라는 소재가 상당히 독특한데, 그래서인지 극중에서 벤이 처음 비닐하우스를 언급할 때 주변 객석에서 실소가 들린다. 하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왜냐면 이 비닐하우스라는 것이 분명 이 영화에서 중요한 소재임이 분명해 보이는데 나는 아직 그 의미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버닝>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그점이 이 영화의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지금까지는 단점으로 느껴진다. 장점은 보는 재미가 꽤 있다는 거다. 이창동 감독 영화 중 가장 장르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국형 스릴러의 냄새가 나며, <곡성>이 얼핏 얼핏 떠오른다. 그러나 <곡성>이 곡선이라면 <버닝>은 미로에 가깝다. 별뜻은 없고 그냥 단순 wordplay 해봤다. 더 복잡하다고 이해하시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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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닝>이라는 미로에 도전하는 것은 나중에 해보기로 하고, 오늘은 좀 더 간단한 인상 평가만 해보려고 한다. 일단 <버닝>은 왠지 모르게 하루키 소설의 향기가 진하게 배어 있다. 내가 그의 소설을 좋아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지점이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게 도움을 줬다. 그리고 유아인, 스티븐 연, 전종서가 각각 맡은 캐릭터들이 모두 매력이 넘친다.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유아인이 맡은 주인공 종수가 꼴찌다. 그가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주인공인게 아쉬울 정도다. 내가 사랑하는 스티븐 연은 벤이라는 어린 갑부 연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한국말 발음이 좋아서 신기했다. 벤은 영화 프리뷰나 영화사에서 미리 마케팅 했던 정보로 수수께끼의 남자라고 표현됐었는데, 그 표현이 딱 맞다. 얼마나 수수께끼냐면, 영화를 통틀어 진실을 말한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냐 따져볼 수 있을 정도다. 마지막으로 오늘부로 이제부터 사랑하겠다 다짐한 전종서 배우가 연기한 해미. 영화의 매순간, 심지어 어떤 사람도 실제 입으로 뱉지 않을 문어체로 헛소리를 뱉는 순간에도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소설가 양반이 쓴 시나리오라 어쩔 수 없었던 것인가. 그리고 특히 판토마임을 하는 순간이 인상적이었다. 판토마임을 배우고 싶을 정도. 자꾸 횡설수설하는 것은 어디서부터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할지 감을 잡지 못해서이다. 내일도 다른 영화를 봐야하는데, 걱정이다. <버닝>을 한 번 더 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두 번 봐도 재밌을 것 같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