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 <프랭크 (Frank)>

김한우 2016. 6. 21. 00:35

프랭크 (Frank, 2016)

 

 

 

 

 

 

 

 존(도널 글리슨)은 흔한 청년이다. 흔한 존은 음악을 사랑한다. 길을 걸어가며 보이는 모든 것을 음악으로 만든다. 이 첫 장면이 꽤나 신선했는데(프리스타일 랩퍼 영상에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어떤 인물이 음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게 만들었다. 그래. 이 청년은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한다. 하지만 이 장면은 소년의 진심을 완벽히 보여준 만큼 그의 음악적 재능까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청년은 음악을 사랑하지만 음악적 재능은 없다. 영화 <프랭크>의 인트로는 절묘했다.

 

 

 

 

 영화의 주인공답게 존은 우연히도 한 밴드의 멤버가 되어, 프랭크(마이클 패스벤더)를 비롯해 다른 재능을 가진 멤버들과 창작 작업을 함께하게 되지만, 결국 멤버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소중한 추억을 갖게 된 존은, 영화가 끝난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천재와 자신의 재능의 간격을 깨닫고 현실적인 삶을 살고 있을까, 아니면 SXSW(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에까지 초청받았었다는 자신의 이력을 스펙삼아 다른 밴드에 지원을 하며 꿈을 이어가고 있을까. 마지막 뒷모습에서 어떤 단서를 찾을 수 없어 그의 선택을 예상할 순 없었지만 미래는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꿈을 이룰 수는 없을 거라는 것. 그저 어쩌다 운 좋게 얻은 경험을 위안삼아 살아가겠지. 여기까지 상상하고나니 나는 슬퍼졌다.

 

 

  

  티비를 틀어보면, 영화관에 가면, 책을 펴보면, 뉴스를 보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꿈을 가지게 한다. ‘꿈을 꾸는 것은 위대하다.’, ‘소년(소녀)이여 꿈을 가져라.’, ‘어릴 적 아무 것도 없었지만 성공할 수 있다는 꿈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왔다.’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꿈들이 생겨나고 있을 테지만 그 중 이뤄지지 못하고 소멸되는 꿈은 누가 책임지는가. 꿈을 가지는 것은 죄가 아닐 터인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상실감은 누가 위로해줄 것인가. 그저 도전하는 것이 아름답다며 참가상을 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아름다운 실패라고들 한다. 내가 예술이 미치도록 하고 싶은 사람인데 난 이걸 못하면 안하면 죽을 것 같은데, 내 한계를 깨닫고 포기하는 건 아무리 미화하여도 끝은 씁쓸하다. 나는 아직 패배를 인정하기 싫다. 분명 내 세계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겠지. 재회한 프랭크와 멤버들을 보고 씁쓸함을 느낀 후 거리를 걷는 존의 뒷모습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나는 내 꿈속에서 이 영화의 감독이 되었다. ‘오 나는 혼자 걷고 있네-’, ‘주머니에 한 푼도 없지만’, ‘나는 아직 젊다네-’. OK, CU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