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6월 12일. 시네도키, 뉴욕

김한우 2018. 6. 17. 04:24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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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정말 알쏭달쏭한 영화를 봤다고 썼었는데, 오늘은 그 정도가 더 심한 영화를 봐버렸다. <시네도키 뉴욕>(Synecdoche, New York, 2007). 감독 찰리 카프먼.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괴상한 영화 중 한 편인 <존 말코비치 되기>의 각본을 쓴 사람이다. <이터널 선샤인>의 각본가로도 유명하다. <이터널 선샤인>으론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시네도키 뉴욕>은 이 사람의 감독 데뷔작.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에 대해 이런 평을 남겼다. “유작으로 만들어야 할 영화를 데뷔작으로 만든 감독.” 오 좋은 한 줄 평이었다. 내가 느끼기에도 이 영화는 뭔가 모든 걸 다 쏟아내는 듯한 느낌을 풍기고 있고, 그 주제 역시 무겁다. 온갖 인생의 우울한 것들을 블랙 코미디 톤으로 그려내고 있는 영화다. 말 그대로 멜랑콜리. 영화 초반부에서부터 이 영화는 멜랑콜리할 것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아침 745.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누워있는 얼굴이 보인다. 얼굴이 멜랑콜리하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는 라디오 소리에 잠을 깨는데, 라디오에선 가을에 관해 얘기하고 있다. 문학 전문가는 왜 많은 사람들이 가을에 관한 글을 쓰는 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그 이유는 가을이 멜랑콜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라고 말한다. 9월의 첫날. 케이든 코타드는 이 방송을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리에서 일어나서부터 영화가 끝날 때까지, 케이든은 죽어가는 것, 이미 지나가버린 것들에 대해 슬퍼하고 집착한다. 그리고 그것을 재현하기 위해 거대한 가상 도시를 만들고, 자신이 만난 모든 사람들, 엑스트라처럼 지나가는 행인들까지도 모두 섭외하여 자신의 연극 무대에 올린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국 인생도 어떤 의미에서 연극 같은 거라고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 혹은 반대로 인생을 영화나 연극 등 작품으로 담는 것은 무의미하다, 혹은 불가능하다, 라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 따라서 매 장면, 매 대사들이 상징적이다. 나중엔 이게 지금 극인지, 극 중 극인지, 극 중 극 중 극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보는데 좀 피곤한 영화다. 전체적으로 감독의 욕심이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적당한 수준에서 멈췄다면 괜찮았을 것 같은데, 너무 끝까지 밀고 나가다가 스스로 정리를 잘 하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결말의 임팩트는 상당하다. 이 인생의, 이 연극의 주인, 혹은 신인줄 알았던 케이든도 결국엔 누군가의 지령을 받으며 움직이게 된다. 그리고 그가 받는 마지막 지령. “Die.” 이제 이 극을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이제 그걸 알게 된 순간, 케이든은 죽는다. 내 인생이 끝날 때, 나도 누군가의 지령을 받게 될까. 좀 끔찍한 상상이지만, 어쩌면 그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어차피 다 죽는 거, 지금 죽으라고 누군가 명령을 한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기도. 그래도 난 오래 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