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4일. 헤일, 시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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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코엔으로. 2016년 작품 <헤일, 시저!>를 봤다. 한동안 이 형제 감독의 영화만 보고 싶어졌다. <헤일, 시저!>도 정말 최고였다. 195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이번엔 <바톤 핑크>처럼 할리우드를 비판하기보단, 귀엽다고 어루만져주는 느낌이다. 그런 느낌이 <라라 랜드>를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옛날 할리우드를 코믹스럽게 그렸다는 점에서 <카페 소사이어티> 등 우디 앨런 영화 느낌이 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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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미드 <24>와 유사한 구조, 할리우드 프로듀서 에디 매닉스(조쉬 브롤린)의 27시간을 쫓는 영화이다. 에디 매닉스는 ‘레전더리’ 잭 바우어 급의 문제 해결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프로듀서라는 점에서 또 어느 정도 <24>와 비슷한 점이 있다. <헤일, 시저!>의 27시간의 시작과 끝엔 고해성사가 있다. 영화는 에디의 고해성사로 시작해서 고해성사로 끝난다. 고해성사 뒤에 나오는 약간의 장면들은, 천주교인들이 고해성사 뒤에 이어서 해야 되는 보속에 가까운 장면들이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생각(분심)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 그는 지난 하루 동안의 고민들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듯, 다시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그에게 주어진 일들을 처리한다. 신부님이 에디에게 성모송 다섯 번을 하라는 보속을 줬지만, 그건 천주교인들에겐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수준이다. 헬스 트레이너가 전날 폭식을 했다며 자신의 잘못을 고백한 회원에게, 집에 가서 앉았다 일어났다 다섯 번만 하라는 것과 비슷한 강도다. 신부는 에디가 하루 동안 다른 생각을 했다는 것이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듯 약한 수준의 보속을 에디에게 내린다. 하지만 에디에게 자신의 27시간은 인생 일대의 힘든 시간이었다. 이렇게 ‘영화로 만들어 질만큼’의 하루였다. 그니까 어쩌면 이 영화가 와 닿지 않는 사람들은 신부님의 마음과 같은 것 같다. “그깟 영화가 뭐라고”의 심정. 반면 이 영화가 와 닿은 사람들은 에디의 마음인 것 같다. 에디의 마음은 즉 감독의 마음. 마음속에서 영화가 ‘옳은 일’이라고 느껴지는 사람들. ‘영화를 해라’가 누군가의 음성(voice)으로 들리는 사람들. 아무리 자본이 영화를 점령하였고, 지들 멋대로 수익을 분배하고, 스타 시스템으로 공장 찍어내듯 영화를 만든다 하더라도, 아무리 이 일이 졸라 어렵더라도, 그냥 이 일이 땡기는 사람들. 정말 답 없는 이 영화. <헤일, 시저!>는 이 영화쟁이들의 고해성사다. 한 번이라도 잠깐 다른 마음을 품었던 사람들의 고해성사. 다시 영화를 믿어보겠다는 정말로 진지한 자기 다짐.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이는 아무 것도 아닌 장난으로 보일 것이다. 하지만 에디 매닉스는, 코엔 감독은 남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