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마녀> 느리지만 단호한. 박훈정의 자신감에 배팅한다.

김한우 2018. 7. 3. 03:04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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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가박스 백석점에서 <마녀> 관람. 월요일인데도 사람 꽤 많더라. <마녀>는 개봉 6일째인 현재 백만 관객을 가까스로 넘어 서고 있다. <마녀>가 나름 잘 되고 있는 이유는 온전히 박훈정 감독의 이름값 때문인 것 같다. 그 외에 셀링포인트가 딱히 보이지 않는다. 새삼 <신세계>의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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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마녀><신세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택도 없었다. 그냥 <신세계> 감독에 대한 기대감을 살짝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끝이 없는 중상모략과 현란한 액션신, 그 사이사이로 명대사들이 터지는 <신세계>와 달리, <마녀>는 느리다. 무엇보다 진도가 느리다. <신세계>는 시작 오 분 만에 신세계인 반면, <마녀>는 후반부가 되어서야 마녀를 보여준다. <신세계>를 기대한 관객들은 실망한다.

 

 그렇지만 <마녀>를 무턱대고 <신세계>와 비교하며 별로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요소가 있다. 바로 3부작을 계획으로 만든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라는 점. 2부작도 아닌 3부작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프로젝트이다. 해외 자본인 워너브라더스가 투자/배급을 맡았다는 점이 이를 가능케 한 것 같다. 박훈정 감독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 실제로 이 영화는 그 신뢰에 대한 결과인지, 감독의 자신감이 철철 느껴지는 영화였다. 나는 이 영화의 느림에서 자신감을 보았다. 느려서, 자신 있어 보였다. 마치 깊은 산 속 무림 고수처럼. 나는 여성 원톱 액션 영화중에서 이렇게 액션을 늦게 보여주고, 또 분량도 적은 영화는 처음 봤다. 작년 개봉한 <악녀><아토믹 블론드>를 떠올려 보시라. 자신들이 내세운 장르에 대해 관객들이 실망할까봐 관객들의 기대감을 채우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하며 주인공의 액션 장면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전반 후반 풀타임을 다 뛴 뒤, 연장 후반까지 전력질주하고 나서야 달리는 것을 멈출 수 있다. 그 결과 그 영화는 감독 자신의 영화가 아닌, 관객을 위한 영화가 되어버린다. 마치 관객을 위해 존재하는 스포츠 경기처럼. 그래서 마침내 관객이 만족했다 하더라도, 영화는 영혼이 없는 영화가 된다.

 

 하지만 <마녀>는 감독의 영혼으로 가득 찬 영화이다. 워너브라더스가 박훈정 감독에게 흥행엔 신경 쓰지 말고, 3부작을 완성 시킬 생각만 하라고 하며 드루와 드루와한 것 같다. <마녀>의 액션은 1부에선 이정도면 충분하다는 듯이 단호하다. 나는 이 단호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이 단호함이 대성공했던 예도 기억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 <다크 나이트>가 베스트 영화 중 하나인 나는 <배트맨 비긴즈>를 너무나 지루하게 봤었다. 그리고 <배트맨 비긴즈> 역시 매우 느렸고, 동시에 그 어떤 영화보다 단호했다. 박훈정을 감히 놀란과 비교하는 것이 못마땅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번 영화에서 이 감독의 고집을 보았고, 응원하고 싶어졌다. 고집만큼은 놀란 급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본전 뽑을 생각에 한 편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그러고도 실패하는) 기획 영화들이 판을 치는 한국영화 시장에서, 이는 꽤 과감한 도전이다.

 

 그렇다면 이제 진짜로 다음 편이 중요하다. 다음 편이 망작이면 이 글도 망글이 될 것이다. 다크나이트 3부작의 투자사 또한 워너브라더스였다는 점이 미세하게나마 기대감을 높이게 한다. 파트 원 파괴(subversion)’ , 마녀는 무엇을 재건설할 것인가. 영화 후반부 아주 잠깐 동안 매력을 발산했던 자윤이라면 무엇을 한다 해도 흥미진진할 것 같긴 하다. 생각해보면 정말 잠깐이었다. 마치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그 잠깐의 기회처럼. 박훈정 감독은 <마녀 파트1>, 이정도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을 정도의 매력을 보여준 뒤, 상위 라운드를 위한 무기까지 남겨 놓는데 성공한다. 보통 자신감으론 절대 할 수 없는 선택이다. 이 글은 그 자신감에 대한 배팅이다.

 

 

포스터는 정말 구리다. 실드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