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15시 17분 파리행 열차
7/8
-
이어서 <15시 17분 파리행 열차>(The 15:17 to Paris>을 봤다. 정말 대단한 영화였다. 다시 한 번 이 30년생 할아버지 감독님에게 감탄. 이 영화도 역시 <설리>처럼 미국의 영웅을 조명하는 영화인데, 그 조명의 강도(국뽕의 강도)가 <설리>보다 강했다. <설리>가 미국인들 힘내요! 우리 다 같이 으쌰으쌰 해봐요! 하는 영화라면,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그냥 이 세 청년 최고! 하는 영화인 느낌. <설리>에서는 또한 어느 정도 사회 비판적인 시선도 들어가 있었다. 영웅이 영웅으로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게 했던 ‘관료주의’에 대한 약간의 비판이랄까. 아무튼 이번 영화에 비하면 <설리>는 꽤 복합적인 영화였던 것이다. 반면 <15시 17분 파리행 열차>는 오로지 미국의 영웅만을 위하는 영화이다.
-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라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니 사실 줄거리랄 것도 없는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로, 2015년 암스테르담 출발, 파리 도착 행 열차에서 미국 청년 셋이 총을 든 테러리스트(아마 외로운 늑대로 보인다)를 막은 사건을 영화화한 것뿐이다. 그래서 사실상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먼저 청년들의 성장기를 보여주고, 이 청년들이 왜 그 기차를 탔는지를 설명한 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재현한다. 이 다큐멘터리가 극영화가 되는 것은 영화에 이 멋진 청년들의 성장기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청년들은 어렸을 때 그렇게 대단한 아이들이 아니었어요, 가 영화의 드라마적 요소이다. 교장실에 자주 불려 다니고, 집중력이 부족하단 소리를 듣고, 군대에 가서도 자주 혼나기 일쑤였던 아이가 결정적인 순간에 온몸을 던져 테러를 막아낸다. 이런 이야기는 영화로 봤을 때 그 중에서는 딱히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인지 왓챠 평을 보면 사람들이 욕을 그렇게 하고 있다. 지루하다. 고작 이런 걸로 영화를 만드냐. 주인공의 삶이 특이하지 않다. 느리다. 재미없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이 이야기는 꼭 영화로 만들어 알려야 하는 이야기이므로 그는 기꺼이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 지난번 <설리>를 이야기하면서 ‘타이밍’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이 영화냐. 이 영화를 보고 어쩌면 그는 알려야 할 영웅들의 리스트를 적어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년 후면 90세가 되는 이 감독에게 타이밍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
이 영화가 정말로 특별하고 대단한 것은 이 영화의 배우가 실존 인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기가 자신을 연기한 것이다. 앞에 다큐멘터리라고 표현한 것은 단지 한 번 그렇게 표현해본 것이 아니었다. 나는 크레딧을 보고 나서야, 아니 보고 있을 때마저 의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영화 정보 창을 확인하고 나서 비로소 감탄하며 온몸에 느껴지는 소름을 즐겼다. 참 기분 좋은 소름. 실존 인물이 조연이나 까메오 정도로 나온 영화는 본 적이 있는 것 같지만, 이렇게 실존 인물 세 명이 동시에 주연을 연기한 것은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배우들이길래, 오 이스트우드 할아버지가 이번 영화는 신인들로 가볍게 가려는 영화이구나, 했었는데 참 반전이었다. 영화 후반부에 실화인양 리얼카메라 화질로 찍힌 화면이 나오는데, 이때도 난 몰랐다. 보통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에서 자주 보여주는 스타일로, 크레딧이 나오며 실제 인물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그러면서 배우가 그대로 나오길래 바보 같이 속으로 이거 좋은 트릭이네, 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는 감독의 정말 대단한 용단이다. 어느 누가 연기 경험 없는 실존 인물을 실제 역할 연기를 하게 할 수 있을까. 유례없는 시도. 노장 감독의 대단한 실험 정신. 아직도 실험을 하고 있다니. 하지만 어쩌면 이는 실험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험이라기보다는 리스펙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프랑스 정부가 그들에게 훈장을 수여하는 장면이다. 나는 실존 인물이 이 영화에 얼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영화 크레딧에 다른 유명한 배우의 이름이, 예를 들어 ‘톰 행크스’가 나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을 가져가버리는 것 대신,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의 이름을 그대로 크레딧에 박아준 것에 감동을 느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이들에게 영화라는 훈장을 달아준 거다. 이 영웅들에게 리얼 훈장을 줄 수 없으니 영화를 통째로 바친 것이다. 줄 수 있는 게 이 영화밖에 없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내가 직접 나오는 영화를 선사 받은 그들은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얼마나 감동적일까. 이를 본 다른 미국 사람들은 얼마나 함께 고양될까. 얼마나 국뽕이 차오를까. 또 그들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기꺼이 몸을 던질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클린트 이스트우드 역시 훈장을 함께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
소년의 방 벽에 걸려있던 포스터가 참 재밌다. 처음 보이는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 그리고 반대편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의 포스터가 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자신의 영화. 나는 처음에 이를 발견하고 이게 무슨 장난이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만약 실제로 이 아이가 자신의 방에 이 영화 포스터를 달았었다고 말했다면, 이는 장난이 아닌 진짜다. 만약 포스터를 없애버렸다면, 그게 장난인 거다. 결론적으로 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자란 소년이 영웅이 되었다고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참 뿌듯하겠다. 그런 면이 이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은 원인 중 하나일수도 있겠다. 훗날, 이번엔 이 영화 <15시 17분 파리행 열차>의 포스터를 방 한 켠에 붙여놨던 소년이 영웅이 되기를 바라면서.
-
내일 얼른 필로 사서 정성일 선생님 글 읽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