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6일. 서버비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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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나인에서 <서버비콘>을 본 날. 사실 진짜 봤다고 할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시작하자마자 영화의 재미와 상관없이 졸음이 밀려와서, 거의 한 시간 동안 꾸뻑 꾸뻑 졸며 영화를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버비콘>은 딱히 졸면서 봐도 큰 지장이 없는 영화였던 것 같다.(고 자위하는 중이다.) 끝나고 이어진 백은하 기자의 GV에서 나온 얘기를 들어보니, 이 영화는 디테일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종 차별, 그리고 힘든 살림살이 때문에 가족을 계획 살인하여 보험금을 타내는 이야기. 굉장히 익숙한 이야기이다. 여기서 인종 차별을 빼면, 이런 이야기는 한국에도 많다. 특히 IMF 시절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 작년에 본 장항준 감독의 <기억의 밤>도 그런 이야기였다. 다만 그런 영화들은 주로 이 비극의 원인으로 ‘사람’ 대신 ‘사회’를 지목한다. 반면 <서버비콘>은 영화의 제목은 지명(地名)이지만, 배경 대신 사람에게 일침을 날리는 영화이다. “힘든 것도 사실이긴 한데, 그래도 그런 짓 하고 있는 너네가 더 나뻐”, 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이 미국 영화도 어쩔 수 없이 또 반(反) 트럼프 영화이다. 일명 “LOOK WHAT YOU DID” 영화. 인종 차별, 난민, 혹은 장벽, 또는 언론. 이와 관련된 것이 요즘 나오는 미국 영화의 소재로 쓰인다면 이건 무조건 트럼프 얘기다. 달리 생각할 수가 없다. 2014년 4월 16일 이후 나오는 모든 재난 영화에서 세월호를 떠올리고, 자연스레 그때 우리나라의 리더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우리들과 똑같다. 그래서인지 <서버비콘>은 약간 헐겁다. 좋은 의도를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들의 기본적인 속성인 것 같기도 하다. ‘대의’를 위한 영화이다 보니, 다른 것들이 희생되는 것이다. 이른바 ‘참가에 의의’를 두는 전략. “이 영화는 좋은 영화이니, 일단 만들어지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당연히 다른 영화보다 헐거울 수밖에 없다. 그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무엇보다 코엔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영화(<파고>)를 리믹스해서 <서버비콘>의 각본을 썼다는 것이다. 조용필 씨가 좋은데 쓰라고 후배 가수에게 ‘단발머리’ 리메이크 허락해준 느낌. 아무리 좋아도 원곡을 뛰어넘기는 힘들다. 헐거움을 메꾸기 위해 배우들이 열일한다. 내 생각엔 페이도 얼마 안 받았을 것 같다. 맷 데이먼은 기능재부했을 것 같다에 치킨 한 마리를 걸겠다. 백은하 기자의 이야기 중에 ‘왜 조지 클루니 감독은 아내 역을 쌍둥이 캐릭터로 만들어 줄리안 무어에게 1인 2역을 하도록 했을까?’라는 부분이 있었다. 가장 귀 기울여졌던 부분이었다. 백 기자는 이에 대해 이 쌍둥이 자매가 유일하게 다른 것이 머리 색깔 하나라며, 색에 집착하는 백인 남성을 보여줬다고 해석했다. 나름 일리 있다며 끄덕 끄덕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제작비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화의 스케일과 퀄리티치고 배우의 이름값이 너무 좋다. 딱 하정우가 영화 만든 다니까 하정우랑 친한 조진웅, 정우성이 출연해준 것 같은 느낌이다. 쓰면 쓸수록 내 가설에 내가 설득 당한다. 치킨 한 마리에 맥주 1000cc 까지 추가한다. 자신 있는 분 있다면 배팅하시라. 하정우 얘기 나온 김에 하정우 얘기를 좀 하자면, 나는 하정우가 뭘 하든 그를 응원할 거지만, 굳이 영화감독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다. 그의 연출작 <롤러코스터>를 정말 재밌게 봤지만, 그것보다는 그의 얼굴이 너무 좋고, 그의 연기가 너무 좋다. same goes for 조지 클루니. <서버비콘>은 딱히 나쁘진 않은 영화였지만, 조지 형에게도 같은 말을 전하며 오늘의 일기 마무리.
아트나인 이벤트로 받은 케이스~ 뭘 넣기 위한 케이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케이스. 상처가 났을 때 붙이는 밴드도 함께 들어있다. 그래서 사실은 밴드 케이스인 것 같은데, 밴드만 넣기 위해 사용하고 싶지는 않은 케이스이다. 담배를 핀다면 담배를 몇 까치 넣어도 될 것 같기도 한데, 또 넣으면 넣은지 모르고 까먹을 것 같은 케이스. 그리고 이 GV의 목적이었던 스티커를 함께 받았다. 바로 노트북에 붙붙
- 서버비콘 스티커를 찾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