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풀 메탈 자켓
7/21
-
오 늘 본 영화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자켓>. 전쟁 영화, 특히 미국 전쟁 영화는 보기가 자꾸 망설여진다. 어차피 다 똑같은 것 같고, 돌이켜 보면 실제로 항상 그랬다. 뭔가 이번에는 다른 주제를 얘기하는 것 같고, 혹은 이번엔 다른 주특기를 가진 병사가 나와 다른 비쥬얼을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 영화들을 떠올려 보면 다 거기서 거기였다. 결국엔 전쟁을 반대하는 영화. 전쟁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영화. 전쟁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영화. 어차피 다 똑같다면, 왜 내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가. 가뜩이나 볼 영화 많아 죽겠는데. 관련해서, 언젠가 전쟁 영화 중 최고의 영화를 골라보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면, 나는 아마 답을 하지 못할 것 같다. 다 똑같은데 그 중 최고의 하나를 고를 수 있을까? 애초에 전쟁 영화 중 ‘최고’로 뽑을 만큼 좋은 영화가 있을 수 있을까? 그래봤자 또 하나의 전쟁 영화 아닌가?
-
그럼에도 나는 전쟁 영화에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이 모순 덩어리. 최근 본 <허트 로커>가 그랬다. 나의 모순에 대해서 반박하자면 <허트 로커>는 전쟁 영화라서가 아니라 영화의 다른 점 때문에 좋았다. 결코 전쟁이어서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허트 로커>를 전쟁 영화라고 구분 짓기 싫다. 하지만 내가 그러기 싫다고 해서 <허트 로커>를 전쟁 영화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를 장르로 나누는 것에 대해 좋아하지 않는다. 액션 영화, 반전 영화, 코미디 영화, 다 마케팅 할 때 편하기 위해서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심지어 이 구분이 편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나 전쟁 영화만큼은 이를 거부할 수가 없다. 전쟁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전쟁 영화다. 전쟁 영화에서 코미디가 나오고, 전쟁 영화에서 드라마가 나오고, 전쟁 영화에서 반전이 나오더라도 전쟁이라는 요소가 영화의 다른 모든 것을 잡아먹는다. 이 자체가 전쟁의 특성을 말하는 것 같다. 전쟁에선 전쟁 외의 것들은 모두 사라진다. 그게 전쟁의 특성, 무서움일 것이다. 그래서 <허트 로커>가 아무리 인간에 관한 고민을 진하게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허트 로커>는 여전히 전쟁 영화이다. 이래서 전쟁 영화를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
전쟁 영화를 보니 전쟁 영화처럼 또 전쟁 영화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다. 그러나 <풀 메탈 자켓>은 내가 본 전쟁 영화 중 가장 다른 전쟁 영화였다. 특히 영화 전반부의 역할이 크다. 여려 명의 남자들이 머리를 밀리는 모습으로 시작하는 영화.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입대 전의 삭발식 풍경이다. 삭발식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미군 해군의 훈련병 한 분대가 트레이닝을 받는 장면을 1부로 진행한다. 주인공은 이 분대의 분대장 훈령병인 조커와 문제의 훈련병 pyle. pyle은 미국 유명한 코믹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그 드라마 역시 해군 훈련병을 다룬 유명한 드라마였고, 거기서 pyle이란 병사가 뚱뚱했고 덤벙댔기 때문에 자막에는 뚱땡이라고 번역이 된 것 같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 약간 모자라 보이는 사람에게 ‘맹구’라고 부르는 거랑 비슷하다. 고유명사지만 형용사까지도 갖고 있는.
1부는 사실 흔한 이야기이긴 하다. 훈련소 교관의 강압적인 교육 방식과 구성원들의 따돌림으로 인해, 안 좋은 영향을 받은 한 훈련병이 결국 총기 사고를 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익숙하다. 하지만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자켓>이 특별한 것은, 이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어딘지 모르게 섬뜩하고 무서운 분위기를 끊임없이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이 훈련소는 <샤이닝>의 호텔 같은 분위기를 내뿜는다. 그니까 호텔이 그 소설가를 미치게 했듯, 훈련소가 pyle을 미치게 한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pyle이 마지막에 그 섬뜩한 표정을 지을 때, <샤이닝> 포스터에도 박혀 있는 잭 니콜슨의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이 1부로만 쭉 이야기를 만들었어도 참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았다. 하지만 영화는 1부를 50분 정도에 멈추고, 이 과정을 관찰자 입장에서 지켜보단 조커라는 인물의 뒷이야기로 2부를 전개한다.
전쟁은 이때부터 등장한다. 베트남에 파견을 가게 된 조커. 뒷이야기는 1부보다 더 더 흔하다. 전쟁터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동료를 잃고 첫 살인을 저지르게 된 한 병사의 이야기. 이야기만 보면 정말 단순하지만, 조커의 1부의 기억이 이 모든 것을 특별하게 만든다. 이 점이 내가 <풀 메탈 자켓>을 다른 전쟁 영화와 다르다고 느낀 이유다. 이 영화의 방점은 2부, 전쟁이 아닌 1부다. 따라서 전쟁 영화라기보다는 군대 영화라고 보고 싶다. 결론적으로 내가 본 <풀 메탈 자켓>은 조커가 1부의 과정을 거쳐 전쟁에서 무엇 무엇을 했다!를 이야기하는 영화가 아니라, 1부의 과정을 겪은 조커라는 인물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를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그래서 1부, 전쟁에 가기 전의 장면들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다. 물론 베트남 전쟁에 대한 풍자도 꽤 들어가 있지만, 확실히 1부는 베트남 전쟁이 없었다 하더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베트남 전쟁에 관한 것은 조금 부수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에서 벌어지는 ugly한 것들의 대한 이야기.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풀 메탈 자켓>의 메인이다. 마지막에 동료들에게 ‘Medal of Ugly’를 받게 되는 조커를 보며,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개인의 인권을 모조리 무시해버리는 이 집단이란 얼마나 추한 것인가, 를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다. 군대 정말 최악. 내 4개월 선임 박**. 아직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풀 메탈 자켓>은 어찌 됐든 내 최고의 전쟁(군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