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에는 없는 것.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 2013)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다. 사실 이런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말을 굳이 첨언하지 않아도 되는게 오히려 영화에선 관객들의 마음의 안정을 위해 실제보다 보이는 고통을 완화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상상해서 영화로 만들었던 간에, 현실보다 약할테니, '실화를 기반으로 했다'는 말은 오히려 영화의 완성도를 방해한다.
그런 점에서, 그리고 그 외에 여러가지 요소로 인해 영화 <귀향>이 떠올랐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시대였고,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나은 상황들. 지구 반대편에선 이런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는데 우리나라에선 제작 투자조차 받지 못해 시민들의 힘을 빌려야 하는 상황 등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캐스팅이 인상적이었는데 거의 주연급 탑 배우들, 베네딕트 컴버배치, 마이클 패스빈더, 브래드 피트 등이 출연한다. 특히 마이클 패스빈더의 악덕 백인 지주 연기는 개인적으로 나쁜 백인 연기 1위라고 생각했던 <쟝고>의 디카프리오를 넘어섰다. 중간에 팻시(루피타 니용고,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수상)를 채찍질하는 롱테이크 씬의 연기는 대단했다. 배우 얘기를 굳이 한 건, 이렇게 백인 최고의 배우들이 최선을 다해 흑인을 핍박하는 연기를 한 것처럼, 언젠가 '일본인 같이 생긴 한국 무명 배우'가 아닌 일본의 탑배우가 나쁜 일본군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싶은 바램에서였다. 그것이 진정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는 자들의 태도일 것이다.
다음에 이 영화를 다시 보거나 혹은 비슷한 다른 흑인 노예 관련 영화를 본다면 <귀향> 대신 다른 영화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귀향>은 그 의미적으로 너무나 고귀한 영화이지만 사실 영화 자체적으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누군가의 고통을 기억하는 방법이 그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재연하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거의 매년 세계적으로 흑인 노예 관련 영화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들이 세계 저명한 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있는데, 위안부 관련 영화는 아직 너무 덜 만들어졌다. 더 많은 세계인들이 그 실상을 알도록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귀향>에서 아쉬운 점을 <노예 12년>은 잘 보완했다. 고통 받는 모습 자체는 많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고통 받는 주체 주변의 무심함을 보여주며 간접적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모두가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 덜 고통 받기 위해선 남의 고통을 못 본 체 해야 했던 시대. 영화에서 가장 희열을 느껴야하는 마지막 장면, 주인공(치웨텔 에지오포)이 원래 자유인이었음이 증명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역설적으로 가장 슬픈 건, 떠나는 그의 뒷배경에선 동료 노예가 울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장면을 위안부 관련 영화에서 보게 될 날을 기다려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