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좀비물에 관하여. <부산행>

김한우 2016. 7. 27. 18:47

 

부산행 (2016)

감독 : 연상호

 

 

 

  좀비물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참 여러모로 좋고 편한 장르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1. 먼저 좀비자체가 그 특성이나 설정이 픽스되어있지 않다는 것. 보통의 재난 영화, <해운대><투마로우> 같은 일어날법한 사태의 재난들은 그 사태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좀비는 그냥 허구이기 때문에 어떻게 시작됐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그런 설명이 필요하지도 않고 필요하더라도 마음대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 편하다. 그리고 좀비의 특성, 예컨대 뛸 수 있는지, 소리를 듣지 못한다, 냄새를 맡지 못한다 등 어떤 감각이 제한돼있는지 제작자의 입맛대로 좀비를 만질 수 있는 것 또한 매력적인 장점이다.

  

 

 2. 스토리를 구상할 때, 뭔가 안 풀린다 싶으면 우리의 좀비를 투입시키면 만사형통이라는 것. 캐릭터간 갈등이 심한데 도무지 해결방법이 생각이 안 난다거나, 부부 중 한 명이 바람나서 둘이 정말 심하게 싸웠는데 이제 좀 관계를 회복시키고 싶을 때! 이때 좀비 한바탕 풀고 나면 모든 것들이 해결되는 식이다. 전문 용어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고 하는데, ‘신의 기계적 출현을 뜻하는 이 단어는 주로 허술한 시나리오를 비꼬는 의미로 쓰인다. (비슷한 수법으로 아시발꿈이 있다.) 신이 나타나서 다 리셋시키면 뭐 이야기가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질이 떨어지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의 좀비는 언제 튀어나와도 문제가 없고, 이야기의 질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친구들이다.

 

 

 3. 우리 좀비는 이런 것도 잘해요. 인간 자체의 본성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게 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이기심, 추악함 등을 표현하기 위해서 인간은 인간을 자주 극한상황에 몰아넣는다. 참 매력적인 주제이므로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극한상황을 만드는 창작자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의 좀비는 이런 역할도 훌륭하게 수행한다. 좀비야말로 인간들을 끝까지 몰아 붙이고, 작은 공간에 몰아 넣게 하고, 자연스레 인간들은 그 속에서 이기심을 발휘하며 서로 죽이고 때리고 아주 난리가 난다. 좀비 넘나 사랑스러운 것.

 

 

 4. 그냥 좀비 자체 보는 것만으로 재밌다.

 

 

 한국 영화로서는 처음 좀비영화가 주목받은 것 같아 좀비물에 대한 얘기를 써봤다. 연상호 감독의 첫 실사영화 <부산행>은 그래서 재밌게 봤다. 결말이 신파적으로 끝났다며 별로라는 의견도 많은 것 같은데 결말 전까지 좀비를 제대로 활용해 이야기를 완벽하게 이끌었기 때문에 그다지 신파처럼 느껴지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 다 좋아하는 배우들이었다는 점도 한 몫했고. 캐스팅이 열일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가장 열일한 분들은 좀비 배우들. 진짜 엄청 무섭게들 달리시는데 역시 좀비는 뛰어야 제 맛인 것 같다.

 또 칭찬할 것은 부산행 열차에서만 이뤄질 줄 알았던 영화가 창의성을 발휘하여 나름 여러 배경을 거쳤다는 것. 도중에 역에 내리기도 하고 다시 타기도하고, 그래서 액션도 다양해진 것 같다. 영화 보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기차가 멈추며 이제 영화 끝인가 싶었는데 아직 동대구역이었던 것! 

 

 

 

 

 

  가장 생각을 많이 하게 했던 부분은 한 할머니가 문을 연 부분이었다. 겨우 좀비들을 뚫고 마동석까지 잃은ㅠㅠ 생존자들을 좀비 취급하던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이, 그렇게 보수적이었던 인물로 인해 몰살당하는 장면에서, 그러면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나는 희열을 느껴버렸다. 죽어도 마땅한 사람들은 진짜 죽어버려야 하는 걸까. 이 세상에서 정의구현이 1도 안 일어나기 때문에 이 극단적인 정의구현에 희열을 느꼈던 것 같기도. 나쁜 사람들이 마땅한 벌을 받는 일이 웬만큼 일어나는 요즘이었다면 이건 감독이 잘못했네. 라며 혀를 찼을지도.

 

결과적으로 이야기도 좋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 상당히 만족했던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