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즈에 걸린 한 남자의 영웅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Dallas Buyers Club, 2013)
감독 : 장 마크 발레 Jean-Marc Vallee
에이즈에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에이즈는 한 때 동성끼리의 섹스로만 걸리는 병으로 인식됐었습니다. 지금은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이는 사실이 아닌 걸로 밝혀졌지만 에이즈 환자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좋지 않은 편견과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은 1980년대. 그 아무리 자유로 상징되는 미국이라는 나라도 작년에서야 동성 결혼 합헌이 났으니, 그로부터 약 30년 전인 이땐 에이즈 환자들에 대한 혐오가 어떠했을까요? 요즘 모 인터넷 사이트들에서 볼 수 있는 혐오 정도로 볼 수 있을까요? 근데 인터넷에서의 혐오는 가상공간에서 글로만 이뤄지는 것이지만, 그런 것들이 없던 때에는 필시 직접적으로 행해지는 폭력이었을 테니 아마 더 심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론 우드루프(매튜 맥커너히 분) 또한 그런 폭력을 행하던 사람 중 한명이었습니다. 폭력을 행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센 폭력을 행하던, 보수적인 백인남자의 전형입니다. 론이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이를 부정하며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내는 장면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론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보다 본인이 동성애자 취급을 당하는 것이 더 싫었던 것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동성과 섹스를 한 적이 없는데 동성애자만 걸리는 병에 걸리다니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론은 앞으로 30일 남았다는 자신의 인생의 첫날을 평소처럼 술과 약을 하며 방탕하게 보냅니다.
영화는 이런 편견을 가진 사람이 그 편견을 깨가는 과정을 그립니다. 당시에는 에이즈를 치료할 확실한 약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유일한 약인 AZT가 사실은 큰 부작용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아낸 론은 외국에서 승인되지 않은 약을 가져오고, 그 약을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에게 판매하며 돈을 벌기 시작하고 사업을 키웁니다. 그 사업의 이름이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이지요.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게이와 인연을 맺게 되고 그와 친구가 됩니다. 그리고 (주로 동성애자인) 환자들에게 올바른 약을 제공하지 못하게 하는 FDA와 싸우기까지 합니다.
사실 론이 정말 그들을 위해서 싸우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사업의 번창을 위해서 싸우는 것인지 헷갈렸습니다. 후반부에 돈이 없는 환자를 위해 자신의 차까지 팔라고 하며 도와주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중요한건 전 론이 그렇게 마음이 변하게 된 동기를 찾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론은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 약을 팔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좋은 일을 한다기보다, 오히려 남의 건강을 대상으로 돈을 버는 속물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대목에서 그가 자신의 이득보다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행동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나요? 누가 알려줬으면 좋겠네요. 영화에서 유일하게 걸리는 지점이었습니다.
의도가 어찌됐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죽을병에 걸린 사람들을 살려준 정의로운 행동이었습니다. 실제로 론의 약이 효과가 있었거든요. (살날이 30일 남았다는 론은 그로부터 7년을 더 살았습니다.) 반면 FDA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이 승인한 약만 인정하고, 론의 사업은 ‘공식적으로 허락되지 않은 약을 판다’는 이유로 저지했습니다. 시민들의 위생과 건강을 위해 존재하는 FDA가 실제로는 그것을 해치고, 개인의 이득을 위해 활동한 론이 환자들을 살리는 일을 한 상황인 것이지요.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자주 생각하는 주제인데,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이고 법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또 종교는 왜 존재하는 걸까요. 정답 : 모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국가라는 울타리가 존재하고, 법이 존재하고, 사람들을 위로하는 종교가 존재합니다. 사람들이 없으면 위의 것들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당연히 이것들은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해야 합니다. 사람을 위해 이런 것들이 있는 것이지, 국가, 법, 종교를 위해 사람들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질서, 법의 수호, 종교의 진리를 핑계로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이든지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널리 알리는 종교에서, ‘성경에 동성애 반대 구절이 있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 위생과 건강을 책임져야하는 FDA에서 ‘승인 되지 않았음’을 이유로 사람들을 살리는 약을 금지시키는 것 또한 존재의 목적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론은 그것에 맞서 싸운 사람이었고, 나라가 하지 않은 일을 한 사람입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故김관홍 잠수사님이 떠오릅니다. 이 영화는 에이즈에 걸린 한 남자의 영웅담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
- 2014년 86회 아카데미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제치고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매튜 매커너히와, 함께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자레드 레토의 연기가 정말 돋보입니다. 이 둘의 연기 때문이라도 영화는 볼 가치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에이즈에 대해 잘 모르셨던 분이라면 꼭 한 번 보시길 바랍니다. 저도 많은걸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