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것: <서시> -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2013)
서시 한강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사이 사이,
움푹 파인 눈두덩과 콧날의 능선을 따라
어리고
지워진 그늘과 빛을
오래 바라볼 거야
떨리는 두 손을 얹을 거야.
거기,
당신의 뺨에,
얼룩진.
읽지도 않을 거면서 오래전부터 노트 여기저기에다 생각나는 말들, 언젠가 노래 가사가, 언젠간 영화 대사가 될 말들을 끼적였었다. 그 많은 노트 중 하나에 '운명 반가워 너구나'라는 말을 묻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가진 부정적인 측면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끝까지 원할 운명이라 생각했다. ‘너구나’는 운명에게, 너였구나. 반갑다. 네가 그동안 날 이렇게 힘들게 했구나. 그래도 고맙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정말 고맙다. 하며 이 시의 화자처럼 운명을 안아주려 했다. 너 참 고생 많았다.
그리고 그 말을 묻은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운명은 지금 날 비웃고 있을 게다. 난 한 게 아무 것도 없다. 운명을 위로해주는 것, 내 운명을 탓하는 것도 온 힘을 다해 운명과 맞서 싸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내 운명에게 유니폼을 교환하자고 말할 자격도 없고 죽기 전에 이름이라도 듣자고 말하는 검객처럼 이름조차 물을 자격이 없다. 내일 내가 죽는다면 운명은 내 장례식에 오지 않을 것이다.
난 내일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슬프게도 그것을 확신하고 있다. 내일도 난 크게 변하지 않겠지. 그래도 조금씩 언제 올지 모를 내 장례식을 준비해야지. 뻔하디 뻔했던 ‘내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 말의 의미를 새삼 느꼈다.
출처 : 인스타그램 (writeanddraw_hyunseo)
#그 외 한 것
고객님 아직 젊으시지만 내 장기 분들과 치아께선 언제 문제가 생길지 모르니 미리 대비하라는 고마운 전화들은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저번에 조금 기분이 안 좋은 상태였어서 말을 중간에 끊고 괜찮다하고 바로 끊었더니 오늘 같은 데에서 또 전화가 왔길래 이번엔 스피커 폰으로 해놓고 그냥 켜놓았다.
원래 생각엔 안 살거면 그냥 빨리 끊어드리는게 그분들을 위해 좋은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은 통화 괜찮으시죠?"하며 또 전화가 온 걸 보니 정해진 할당량이 있나보다 싶어 끝까지 말씀하게 두었다. 김한우 고객에게 설명을 완수해야 내 이름에 X표가 쳐지고 윗사람에게 혼나지 않게 되는 거라면 들어드릴 의향이 있는데 어떤 방법이 그분들에게 그나마 좋은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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