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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O 창간 기념 상영회로 영상자료원에서 홍상수 감독의 <클레어의 카메라>를 보고 왔다. 홍상수 신작 일찍 봐서 이득, 좋은 자리에서 공짜로 봐서 이득, 게다가 영화가 짧아서 또 이득이었다. 막상 조금 짧으니까 아쉽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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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의 카메라>는 김민희 배우가 2016년 <아가씨>로 칸 영화제에 초청받았을 때 ‘겸사겸사’ 찍은 영화라고 한다. 물론 겸사겸사는 내 맘대로 추가한 단어이다. 그러나 홍상수 감독의 스타일상 겸사겸사였을 확률도 꽤나 있다고 생각한다. 나였어도, 아니 어떤 감독이라도 아니 어떤 예술가였어도 그렇게 하고 싶었을 것 같다. 칸에 가는 김에 뭔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 문제는 ‘그 생각을 실현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없는가’일 텐데, 당연히 홍상수 감독은 그런 능력이 충분히 있는 사람이니 영화를 만들어버린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영화도 상대적으로 짧은 편일 테고. 아니 홍상수 감독은 이 역시도 충분히 조절할 수 있는 감독일 테다. 절대 ‘겸사겸사’ 찍었다는 사실이 영화의 길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찍고 싶은 대로 찍은 영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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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의 카메라>는 홍 감독의 몇 전(前) 작품처럼 시간이 뒤죽박죽이거나, 혹은 말이 안 되는 뭔가가 등장하거나 하는 부분은 딱히 없는 영화이다. 그런 의미에서 친절하다고 느껴졌다. 그저 김민희를 따라가고, 이자벨 위페르를 따라가고, 장진영을 비웃으면 됐다. 기억에 의존해 영화를 더듬어본다. 영화가 시작되면 만희(김민희)가 문이 열린 방의 책상에 앉아 뭔가 일을 하고 있다. 바로 옆 방문엔 자신의 영화인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영어 포스터가 얼핏 보인다. 그걸 보여준 뒤 카메라가 줌인된다. 만희의 상사(장미희)가 만희에게 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잠시 멈추고 나가자고 한다. 그 다음 장면은 어느 카페 테라스. 만희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누군가 다가온다. 아직 한국에 돌아가지 않으셨었냐고 묻는다. 그렇다. 만희는 상사로부터 해고를 통보받은 것. 칸으로 해외출장을 왔던 것인데 그곳에서 갑자기 해고를 당한 것이다. 그 뒤 만희가 상사로부터 해고를 당하는 과거 장면이 나온다. ‘정직한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냥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 해고의 이유다. 시간 순서가 어느 정도는 바뀐 듯 하나 이정도는 홍상수 영화에서 귀여운 정도다.
사실 해고의 이유는, 아니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질투 때문이었다. 아마 해고 당하기 전날 밤, 만희가 소완수 감독(정진영)과 하룻밤을 보냈던 모양인데, 소 감독은 이미 그 상사와 어느 정도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질투, 질투면 충분하다. 그러다 영화가 약간 지루해질 때 쯤, 이자벨 위페르가 등판한다. 마치 위기에 처한 반지원정대를 구해주러 온 간달프처럼, 이자벨 위페르가 언덕 위에서 내려온다. 실제로 그녀가 등장하자마자 영화가 활기를 띤다. 위페르가 연기한 클레어는 영화 곳곳을 헤집어 놓는다. 만희 앞에 등장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소완수에게 등장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녀는 자신을 예술가라고 소개하며, 한 손에는 즉석카메라를 들고 다닌다. 이 카메라가 바로 클레어의 카메라이다. 클레어의 카메라 자체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카메라이지만, 그 카메라에, 그 카메라로 찍은 사진에 클레어는 특별함을 불어넣는다. 그녀가 그 사진이 특별하다면 특별한 거다. 그녀는 사진 찍는 행위는 참 대단한 것이라며, 누군가의 사진을 찍고 나면 그 순간 그 누군가는 사진을 찍기 전의 그 사람과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클레어가 찍은 사진을 본 소 감독과 만희의 상사는 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클레어가 그렇다면 그런 거다. 왜냐면 그것은 클레어의 카메라고 이 영화의 제목 역시 클레어의 카메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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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가 가장 많은 사진을 찍은 대상은 만희다. 클레어의 말에 따르면 가장 많이 ‘변한 것’은 만희다. 만희가 가장 예쁠 때, 만희가 슬플 때, 만희가 버림받았을 때, 만희가 누군가를 그리워 할 때, 그때마다 클레어는 만희의 사진을 찍는다. 그 순간 만희는 정말 변한 것일까. 물론 누군가는 변한 게 전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변하긴 개뿔, 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생각이 객관적으로 옳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와 상관없이, 클레어는 사진을 찍는다. 사진을 찍으면 그 사람이 변하게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므로 클레어가 만희의 사진을 찍는 것은, 그 순간 만희가 변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일 것이다. 지금 만희가 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계속 변화하라고, 계속 움직이라고. 사진 속 과거 한 순간에 머물지 말고 현재를 살라고. 이자벨 위페르는 김민희에게 이 말을 건네기 위해 이 영화에 등판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내일 좀 더 써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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