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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4월 19일. 졸업(1967)/마이크 니콜스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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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고전 관람. 마이크 니콜스 감독의 <졸업>(1967). 잘 몰랐는데 이제 보니 <클로저> 감독이었다. 2014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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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작품이다. 그럴만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무려 67년에 발표된 영화인데 굉장히 세련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 스타일보다 더 세련됐다고 느낀 것은 이야기이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벤자민(더스틴 호프만)은 혼란스럽다. 자신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 그는 잘 적응하지 못한다. 마음이 심란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만나는 사람마다 자꾸 축하한다고 한다. 그 축하에 벤자민은 체할 것 같다. 마음을 추스르러 방에 들어온 벤자민. 갑자기 자신의 엄마뻘 되는 여인 로빈슨 부인이 방에 쳐들어온다. 귀찮아 죽겠는데 집에 데려다 달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벤자민. 집앞에 도착하자 이번엔 집에 들어오라 그러고, 집에 들어오니 술을 한 잔 하라그러고, 한 잔 하니 방에 따라 들어와 자신의 옷 지퍼를 내려달라며 유혹한다. 겁에 질린 벤자민은 도망치듯 집을 나온다.

 

 벤자민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부모님이 자신의 고민을 잘 들어주지 않나보다. 아빠는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을 거면 왜 지금까지 공부한 것이냐며 다그친다. 갑자기 로빈슨 부인이 떠오른 벤자민은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대화 할 상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원하는 대화는 하지 못 한 채, 육체적인 관계만 지속하게 된다.

 

 영화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로빈슨 부인의 딸이 집에 나타나면서부터이다. 벤자민의 부모님의 요구로 딸 엘레인과 데이트를 해야 되는 벤자민. 로빈슨 부인은 이를 당연히 말리지만, 벤자민은 어쩔 수 없다며 그냥 밥 먹고 간단히 한 잔만 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정말 그 사람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벤자민과 엘레인은 첫 데이트 만에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이에 로빈슨 부인은 질투의 감정을 드러내고, 결국 벤자민은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 엘라인에게 사실을 고백한다. 그러나 엘레인은 이를 받아주지 않고 떠난다.

 

 <졸업>은 뭐 이런 얘기의 영화다. 그 후 벤자민이 엘레인을 다시 찾아가고, 엘레인이 흔들리고, 그러다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 엘레인. 벤자민은 필사적으로 찾아간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그녀의 이름을 외친다. 마침내 엘레인이 벤자민의 이름을 응답하며, 둘은 도망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이 마지막 장면이다. 버스 뒷좌석에 앉은 둘의 표정 변화. 처음엔 정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이 웃고 있다가, 점점 현실의 무게를 느끼며 더 이상 웃지 못하게 된다. 이 장면은 이제 너무 클리셰니까, 모두가 <졸업>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 장면을 이야기할 테니까, 굳이 더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내가 이 결말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그냥 결말이 이래서다. 이 막장에 가까운, 수습이 불가능할 것 같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닫았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최근에 본 <우주전쟁>과 비교하면, 그니까 <졸업>은 거의 <우주전쟁>급 막장 이야기였다는 거다. 벤자민의 세계는 <우주전쟁>의 지구처럼 산산조각 나고, 부서지고, 위태위태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상황에서 <우주전쟁>은 그냥 그런 결말을 냈고, <졸업>은 이렇게 말도 되면서, 의미심장한 메시지까지 전달하는데 성공을 한 것이다. 뭐 그렇다고해서 <우주전쟁>이 별로라는 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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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한지 벌써 4년차. 여전히 혼란스럽다. 이 영화 지금 보길 잘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