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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5월 16일. 90-00한국영화/안티크라이스트/라스폰트리에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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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00년대 한국 영화를 좀 더 보고 싶다. 그때 한국 영화가 주는 특유의 바이브가 좋다. 어떤 점이 좋냐면, 그냥 순진했던 그때의 내가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초록물고기>를 보며, 정확히는 이 장면. 막동이가 배태곤의 차를 운전하는데 길을 태곤이 알려준다. “여기서 우회전.” 지금은 네비가 있기 때문에, 아니 스마트폰 자체가 네비게이션이기 때문에 이런 대사를 듣기 힘들다. 나는 뭔가 이런 느낌들이 좋다. 가끔 핸드폰이 없던 때로, 네비가 없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 나는 온갖 기술이 발전한 지금도 좋지만 다 같이 없었던 아날로그 시절도 좋다. 관련해서 아직 제대로 한국 영화들이 기획되기 전, 바로 직전에 그 재기발랄했던 영화들을 보며 추억에 잠기고, 또 한국 영화의 정체성에 대해 더 생각해보고 싶어졌다. 그런 작품들로 <지구를 지켜라>가 떠오르고 <구타유발자들>이 떠오른다. <라이터를 켜라>도 떠오르고 <선생 김봉두>도 재밌게 봤었던 기억이 난다. 반대로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한국 영화를 주춤하게 만든 영화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뭐부터, 어디서부터 봐야할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좀 봐야겠다. 나는 아직 <공공의 적> 시리즈 한 편도 보지 않은 뉴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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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의 문제의 영화 <안티크라이스트>를 봤다. 지금 열리고 있는 칸영화제에서 신작을 발표한 그다. 그렇다. 신작을 보기 위해 전작을 좀 챙겨보려는 것이었다. 영화는 우선 좋아하는 배우 윌렘 데포가 나와서 반가웠었지만, 그 반가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영화를 보며 즉각적으로 떠올랐던 생각은 유치하지만 실제로 정사를 했는지왜 이렇게 잔인해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뜬 자막 이 영화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에게 바칩니다를 보고 타르코프스키 영화를 볼 때가 됐다는 생각까지. 이런 생각들만 든 이유는 영화가 무지 어려웠기 때문이다. 라스 폰트리에 감독의 영화를 본 건 <도그빌>이 유일하다. 그 영화도 독특하긴 했지만 어렵지는 않았었다. 그 때 그 영화를 보고 글을 쓰다 찾은 인터뷰 등에서 이 감독 곤조 있구나를 느꼈었는데, 그 곤조로 따지면 <안티크라이스트>가 백 천배는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냥 제목부터가 크라이스트안티한다는 제목인데, 이보다 더 도발적이고 고집스러운 제목이 또 있을까. 스윙스가 최근 발표한 <<UPGRADE 3>>라는 앨범 수록곡인 <Holy>가 떠오르기도 한다. 스윙스도 한 고집 한 도발하는 사람인데, 크라이스트에 대한 의심을 가사로는 썼지만 제목엔 이를 드러내지 못했다. 내일 할 일은 당연히 이 영화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이고, 출근길엔 Holy를 들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