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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족> 개봉 D-9를 앞두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전작들을 뒤적뒤적. 그의 두 번째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보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선 after life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었다고 하는데, 이 제목이 조금 더 직설적이다. 왜냐면 이 영화는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한 후, 인생 다음(after life)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 세계의 사람들은 죽은 후 ‘림보’라는 마을에 도착,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린다. 이를 이 마을에 일하는 직원들에게 이야기하면, 직원들은 그 순간을 영화로 만들어주고, 토요일에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그 행복했던 기억만 간직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된다. 행복한 기억만 가지고 떠나는 것. 아마 그곳은 어디든 천국일 것이다. 영화엔 지옥에 관한 언급이 따로 없다. 아마 모든 사람들은 죽은 뒤 림보를 통해 천국에 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행복했던 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의로 혹은 타의로 선택을 하지 못하는, 혹은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림보에 남아 다른 사람들의 영화를 만들어준다. 그니까 림보의 직원들은 모두 선택을 안 한 사람들인 것이다. 과거의 모든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것. 감독은 어쩌면 이것이 지옥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고통을 자처하기도 한다. 자신은 천국에서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일부로 행복한 순간을 선택하지 않는다. ‘나는 평생 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 해.’라며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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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따지면 다른 사람의 행복한 순간을 영화로 만들어주는 사람들은 벌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는 정말로 고마운 일이고, 그 어떤 것보다 보람스러운 일인 것이 분명한데, 어떤 의미에서 이는 고통인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어느 정도 그런 점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영화를 만들면 다른 사람들은 내 영화를 보고 행복해 하는데, 정작 만드는 나는 그 행복을 즐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만드는 과정 자체가 나의 행복한 기억이고, 내가 그 순간을 내가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선택할 수 있다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림보의 직원 모치즈키는 마지막에 결국 행복했던 순간을 선택하고 림보를 떠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엔 그의 영화가 상영된다. 영화는 예상과 달리 그의 약혼녀의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가 영화를 찍던 세트장에 앉아 있다. 그리고 다음 장면은 그의 시선. 그의 시선엔 그와 함께 영화를 찍던 동료들이 보인다. 그니까 그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그가 그의 크루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찍던 순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원더풀 라이프>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굉장히 의미 있고 뜻 깊은 영화일 수 있겠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자신에게는 일종의 선언과 같은 영화이다. “난 영화를 찍는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조금 더 과장하면 “난 영화를 찍다 죽겠다”까지. 다큐멘터리 속 영화, 영화 속 다큐멘터리, 그리고 영화 속 영화까지 볼 수도 있는 <원더풀 라이프>는, 이 영화를 보는 모두의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고, 모두의 영화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게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자신의 대한 영화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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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중에 더 모스트 원더풀한 기억만 가지고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 영화에서 여러 사람들이 등장해 자신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얘기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언제가 가장 행복했는지를 떠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바로 한 순간을 고를 순 없었지만, 조금 생각하다보니 점점 몇 몇 후보군이 떠올랐다. 그러나 슬픈 것은 그 순간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내 주위에 없거나,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라는 것, 또 몇 몇 순간은 혼자만의 기억이라는 것이었다. 혼자인 게 나쁘지는 않지만, 조금 슬픈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죽기 전까진 시간이 많이 남았을 테니, 다행이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것, 또 그 사이에 난 정말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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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림보의 직원 중 한 명인 시오리(오다 에리카 배우)가 어딘지 모르게 신과 함께의 덕춘(김향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승 세계에 메인 남주를 짝사랑하는 여자 캐릭터. 머리 스타일도 비슷하다. 주호민 작가도 알게 모르게 이 영화에 영향을 받았던 것일 수도.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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