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후에.

 

 

 

 

1. 법조인은 미래에 인공지능에 대체될 직업이라는 예측이 있다. 이정미 재판관의 톤이 일정한 게 왠지 인공지능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2. 라이브로 본 분들은 느꼈을 텐데 판결문 낭독 진행은 극적이었다. 재판관들은 탄핵소추 사유 중 한 가지만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했고, 따라서 앞부분은 ‘그러나’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마지막 사유가 탄핵할 만하다며 반전을 넣은 것. 인간이 했기 때문에 이런 극적인 느낌을 낼 수 있던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런 반전이 이런 판결 때 진짜로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

 

 

3. 재판관들은 박 전 대통령이 계속 혐의를 부인하면서 검찰-특검 수사를 거부한 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대리인단 김평우 전 변협회장의 막장 변론이 재판관들을 화나게 했다는데ㅋ 그런데 생각해보면 변호사는 재판관에게 잘 보여야 마땅하다. 재판관도 사람이니까 당연하지. 근데 김평우는 왜 그랬을까. 그는 비록 막장이긴 했지만 엄청난 경력으로 잔뼈가 굵은 사람. 재판관한테 밉보이면 안 된다는 사실 정도는 완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혹시 이 재판은 이미 답없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속으론 탄핵을 찬성, 재판관들에게 흔들리지 말라고 일부러 그런 연기를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재밌는 상상. (재판관들은 대리인단의 총사퇴를 막기 위해 오히려 대리인단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기계였다면?)

 

 

4. 헌재는, 박대통령의 잘못도 잘못이지만, 거짓말하고 죄를 숨기려고 한 것 또한 큰 잘못으로 봤다. 일종의 괘씸죄. 기계도 괘씸죄 판단할 수 있습니까?

 

 

5. 이번에 죄를 인정받지 않은 것이 죄가 없다는 뜻도 아니고 죄를 짓지 않았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탄핵 사유인지- 판단이 어렵다는 것과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뜻. 인정받지 않은 사유들도 시간을 들여 더 세세히 따졌으면 탄핵 사유로 인정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진짜 시간이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이는 국정농단이 탄핵 사유로 확실했기에 속히 판결을 내리기 위한 재판관들의 판단이라고 신문이가 분석했다. 기계는 못 그랬을 거야.

 

 

6. 박ㄷㅌㄹ은 임기 도중 대통령 직에서 파면됐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 예우를 대부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 전에 자진사퇴라도 했다면 연금 연간 약 1억원!!, 기념사업, 비서관, 운전기사 등을 지원받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고, 지금도 아무 것도 안하고 있다.) 다만 경호-경비와 관련된 예우는 최대 10년간 유지된다고 한다. 근데 만약 감옥에 들어가신다면 경호는 감옥을 지키는 건가? 하는 재밌는 상상.

 

 

7.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연산군, 광해군과 이름이 나란히 되는 것인가? 그렇게 될 수 있나? 될 만한 것인가? 하는 궁금증.

 

 

8. “탄핵은 당연하나 세월호 판단을 미뤄 답답해요.” 팽목항에 있는 미수습자 가족 분의 한 마디다. 그리고 나도 헌재의 판단이 아쉽다고 생각한다. 이번 판결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불성실한’ 행동에 대해서는 탄핵심판의 판단 대상이 아니었다고 결론지었다. 물론 그것이 박 ㅈ ㄷㅌㄹ이 죄가 없다는 것, 성실히 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법은 잘 몰라도 ‘참사 당일 성실하였는지 여부가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라는 말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래도 이런 역사적 심판에 이를 인정했다면, 우리나라는 이정도로 시민의 생명권을 중시하는 나라로 기억됐을 것이고 + 세월호 사건은 나라의 대표가 시민의 생명권을 경시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됐을 건데, 아쉽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은 세월호 희생자 가족 분들에게, 툭하면 트집잡히는 그놈의 보상금보다 훨씬 큰 위로가 됐을 것이다. 이와 관련한 김이수, 이진성 재판관의 보충의견은 의미 있지만 실질적인 위로는 안 되는 모양이다.

 

 

9. 촛불집회는 2016년 10월 29일 처음 등장, 탄핵 당일 3월 10일까지 133일 동안 총 19번 진행됐다. 나는 부끄럽지만 한 번 밖에 못 갔다. 고생하신 참가자 분들 이제 날씨도 풀린 것 같은데 다음 토요일부터는 좋은데 놀러 다니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