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LIFE
2017, 감독 다니엘 에스피노자
주연 : 제이크 질렌할
인간은, 처음 보는 미지의 생명체를 만난다면, 호기심에 다가갈까 아니면 두려움에 피할까. 어떤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모든 인간은 마음속에 어느 정도 보수성을 갖고 있다고, 누군가 말한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신문물을 받아들여 지금의 나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잘못되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두려워 결국엔 지금의 나 그대로 있고자하는, 보수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혹자는 ‘호기심에 다가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 주장하기도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은 그 보수성 때문에 결국은 처음 보는 대상을 경계할 것이고, 공격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기에 이를 것이다.
올해 개봉한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에서도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지금과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과학 기술이 발달한 영화 속 현재에, 미지의 비행물체와 외계 생명체가 나타나는데, 인간은 그들이 딱히 인간을 공격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그 비행물체를 선제공격한다. 이렇듯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모든 새로운 생명체들을, 내 목숨과 삶의 터전, 보금자리를 빼앗아갈 잠재적 용의자로 간주한다.
그 이유에 관한 흥미로운 분석을 보았는데, 인간이 무의식적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인간 자신이 바로 그러한 존재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태까지 모든 식민지 역사, 예컨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나 호주 대륙을 정복했을 때, 미지의 생명체였던 당시 유럽인들 본인이, 원주민들을 죽이고 그들의 터전을 차지했었기 때문에, 다른 생명체 또한 자신들이 했던 것처럼 그렇게 할 것이라는 생각이 유전자에 박혔다는 논리다. 내가 높은 자리에 있을 때 그 권력을 이용하여 사적 이익을 취득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너 또한 그럴 것이다,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꽤 그럴듯하고 수긍이 가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새로운 것을 배척하고 내 것을 지키는 보수적인 선택은 옳.은. 선택일까. 이 질문에 대해선 사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당연한 선택이다. 이미 우리가 살아오는 동안 이미 수 천 번, 수 만 번 내렸을 것이고 그 선택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생존이니, 발전이고 자시고 일단 살아남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임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선택이 좋.은. 선택이냐고 질문을 살짝 바꿔보면 답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거기에 좀 더 범위를 넓혀, 인류 전체에게 좋은 것이냐 묻는다면, 고민을 해봐야 할 문제로 바뀌게 된다.
사실 이에 관해 생각해보자고 쓴 글이다. 우리 안의 보수성에 너무 지배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보수적인 것이 더 좋은 선택이라고 말하는 메신저들이 많아지고 있는 세상이다. 미국 혼자 잘 살자고 공약을 한 갑부가 대통령이 되었고, 영국은 자기들끼리 잘 살기 위해 연합에서 나왔다. 이대로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한다면 우리나라는 결국 망할 것이라고, 공포마케팅을 한 것이 한 몫 했다.
영화 <라이프> 또한 그런 잠재적 인식을 만들어주는 메신저 중에 하나이다. 작가와 감독은 억울하겠지만, 혹은 선의였겠지만 영화는 결과적으로 그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미지의 화성 생명체 캘빈은 살아남기 위해, 인간을 공격한다. 그리고 아마 더 잘 살기 위해, 끝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라이프>를 그저 적당히 잘 만든 한 편의 영화라 볼 수도 있겠지만, 이걸 본 인간의 뇌에는 또 하나의 공포 마일리지가 적립된다. "모든 생명체는 나처럼, 내가 그래왔던 것처럼. 살아남기 위해, 나를 공격할 거야." 뿐만 아니라 포스터의 'BE CAREFUL'이라는 문구는,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떤 것을 기대하게 하는지를 어느 정도 보여 주는 명확한 단서이다.
영화 제목 바로 위에 Be Careful, What you search for라는 문구가 써져있다.
참고로 한국판 포스터에는 '가장 위대하고 위험한 발견'이라고 적혀 있다.
이 뿌리 깊은 공포심은 시장에서든 선거에서든, 생산자 입장에서 절대 포기하기 힘든, 승리를 위한 옳.은. 마케팅 전략일 테지만, 인류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는, 인류의 진보를 막는 일종의 암세포가 될 수 있다. 인간이 처음 불을 발견했을 때, 몇 사람들은 놀라 뒤로 물러섰을 테지만, 다른 어떤 사람들은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다가갔을 것이다. 물론 구성원 모두가 겁 없이 다가가기만 하는 사회는 그 나름의 위험성이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버린 게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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