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몰리션 Demolition (2015)
장 마크 발레 감독 Jean-Marc Vallee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눈물을 흘려야하는 상황에 눈물이 흐르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미처 그 상황에서의 대처법을 생각하지 못 했었는데, 어느 날, 그날이 갑자기 다가왔다. (나는 뭐든지 제대로 대비해본 적이 없다.) 할머니의 장례식장, 그리고 2년 뒤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는 것에 실패했고,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와중에도 더 큰 걱정이 나를 너무 불안하게 했는데, 그것은 할머니보다 더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장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못 할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이 또한 제대로 준비하지 못 한 채 그 날을 맞이할 것만 같다. 물론 지금은 모든 사람이 눈물로 슬픔을 표현하지는 않는다는 것, 그리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것이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장에서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 못하는 내 모습을, 그리고 내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생각해보면, <데몰리션>의 데이비스처럼, 남몰래 거울 앞에서 오열하는 표정을 연습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드는 건 여전하다.
아내의 죽음을 바로 옆에서 목격하고도, 딱히 슬퍼하지 않는 데이비스는, 자기 자신을 ‘고장났다’고 판단한다. 이에 기계처럼 자신의 결혼을 분해한다. 기계마저도 분해한다고 해서 100%의 확률로 고장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을지 확실치 않은데, 형체가 없는 결혼은, 사람의 마음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분해해야하는 것일까. 아니 애초에 분해한다고 해서 '수리'할 수 있는 것인가.
이 말도 안 되는 과정을 위해, 데이비스는 먼저 선글라스와 헤드셋으로 눈과 귀를 가린다. 누구보다도 혼란스러울 시기. 온전히 이것에만 집중해도 원하는 답을 얻을까 말까한 상황에서 데이비스가, 혹은 우리가 신경써야할 것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과 나를 향한 비아냥들이다. 영화에서 데이비스는 그것들을 완전히 차단하는 데에 성공하고, 자신을 끝까지 파괴하여 마침내 고장의 원인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눈물을 흘린다. 부럽다, 라는 한 마디로 영화에 대한 감상을 요약할 수도 있겠다.
사실 언젠가부터 눈물이 많아졌다. 예능이나 다큐 TV프로그램을 보다가 자주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곤 한다. (특히 무한도전이 그렇게 나를 울린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울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지만,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써야하는 현실은 그대로다. 나에게도 거추장스러운 선글라스와 헤드셋을 쓰지 않고도, 나답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데이비스가 자신을 가리지 않은 채, 아무 걱정 없다는 듯이 달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다시 한 번 부러워졌다. ★★★★
장 마크 발레 감독과, 제이크 질렌할 각자에게, 거의 최고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 나오미 왓츠의 매력 또한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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