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이야기

퀴어영화이자 퀴어영화가 아닌 영화 <시인의 사랑>

 

 

 ‘동성애자의 권익을 보호하거나 동성애를 주제로 다룬 영화’. 퀴어영화(queer cinema)의 정의이다. 영화 <시인의 사랑>은 굳이 퀴어영화의 정의를 살펴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퀴어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 영화이다(초청받은 토론토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에도 <시인의 사랑> 소개란에 ‘LGBTQ’라는 태그가 붙어 있다). 무기력한 시인이 어느 날 어린 소년을 만나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는 이야기.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들은, 무엇보다 남자 시인남자 아이에게 특별한 감정이 생긴다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나면 이런 기대들이 무색하게 다른 질문들이 떠오른다. ‘이 영화는 정말 퀴어영화가 맞는 걸까?’, ‘퀴어영화의 기준은 무엇인가에서부터, 그리고 궁극적으로 로맨스 영화에 퀴어라는 또 하나의 분류를 하는 것이 유의미한 것인가까지. 사랑에 빠졌을 때의 마음처럼 앞뒤 순서 없이 진행된 김양희 감독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실로 들어온 김양희 감독은 조금 지쳐보였다. 그는 영화 개봉 후 여러 활동들 때문에 살고 있는 제주도를 떠나 서울에 자주 왔다 갔다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엔 도쿄국제영화제에, 9월에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아 관객들을 만나고 왔다. 언론과의 인터뷰만 해도 수십 차례 했었을 김 감독은, <시인의 사랑>이 관객을 만나기 시작한지 몇 개월이 지난 지금, “이제 시인의 사랑으로부터 떠나 새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질문을 받자 언제 그랬냐는 듯 열정적으로 답변을 이어나갔다.

 

 특히 퀴어영화에 대한 감독의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시인의 사랑>은 전형적인 퀴어영화를 기대하고 보면, 인물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는 영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인의사랑에 공감이 되지 않고, 대신 시인을사랑하는 시인의 아내에 몰입이 되기도 한다. 김양희 감독 본인도, ‘영화 속 가장 연민이 가는 캐릭터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시인의 아내라고 답하기도 했다.

 

 하지만 감독 본인은 처음부터 자신의 영화를 퀴어영화라 생각하고 만들지 않은 것 같다. 첫 장편 영화의 소재에 관해 사회적으로 부담감이 없었냐는 질문에 김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때)퀴어라는 것을 규정하고 쓰지 않아서 용기가 필요 없었다.”라고 답했다. 또 시인과 소년의 스킨십 장면을 넣지 않은 이유에 대해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감독. 만약 둘의 스킨십 장면이 있었다면 영화는 선명하게 퀴어영화 장르로서의 색깔을 띠었을 테지만, 감독이 표현하고자하는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독이 느낀 둘의 사랑은 어떤 것이었을까. 감독은 시인이 소년에게 끌린 이유에 대해, “자신의 시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슬픔이나 불행을 찾아다니던 철없는 캐릭터가 불행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고 있는 소년을 보고 복합적인 감정을 느낀 것이라 했고, 반대로 소년의 시인에 대한 감정은 육체적으로 사랑하는 건 아니다고 못 박았다. 그리고 아무한테도 관심을 받지 못한 소년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그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해준 첫 인물이 바로 시인이었기 때문에, 그 시인을 자신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느낀 것이라고 말했다.

 

 이 둘의 사랑도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랑의 형태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시인의 사랑>의 경우, 퀴어영화라는 딱지가 영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사랑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정말 퀴어영화가 아닌가라고 했을 때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김양희 감독은 인터뷰 서두에, 토론토국제영화제와 도쿄국제영화제에서 해외 관객을 만난 소감을 밝히며, 국내 관객과 가장 차별되는 점으로 시인과 소년의 관계를 동성애에 대한 것보다, 두 사람의 교류에 집중한 것을 꼽았다. 감독이 어떤 관객이 더 좋았다고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왠지 그 답이 포함돼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도 우리는 동성 간의 사랑을 담은 퀴어영화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 기회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그 만남에서 영화를 조금 더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퀴어영화에 대한 선입견을 내려놓는 준비가 필요한 것 같다.

 

 

 

 

시인의 사랑

 

감독 : 김양희

출연 : 양익준, 전혜진, 정가람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 전주 시네마 프로젝트 상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