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정리하며 올해의 배우 리스트를 통해 작년 한 해의 한국 영화 시장을 되돌아보려 한다. 좋은 소식도 있고, 안타까운 소식도 있다. 이 리스트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만들었지만, 한 작품으로만 주목 받은 배우들은 제외하는 등 최소한의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따라서 <박열>의 최희서 배우와 <아이 캔 스피크>의 나문희 배우, 그리고 <악녀>의 김옥빈 배우 등은 올해를 대표할 배우에 충분한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외시켰고, 그에 따라 리스트에 여성 배우가 한 명도 없게 되었다.
눈에 띄는 여성 배우가 부족한 것은 작년 한국 영화 TOP10 리스트를 봐도 확연히 드러난다. 흥행 순서대로 <택시운전사>, <신과함께-죄와 벌>, <공조>, <범죄도시>, <군함도>, <청년경찰>, <더 킹>, <꾼>, <강철비>, <남한산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대중의 관심을 받은 여 배우는 한 명도 없다. 그나마 10위권 바로 밑인 11위에 <아이 캔 스피크>가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영화 시장의 심각한 불균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였다.
유해진
출연작 : <공조>, <택시운전사>, <1987>
유해진 배우는 2017년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배우이다. 1월 개봉한 <공조>로 781만, 8월 개봉한 <택시운전사>가 1,218만, 그리고 연말에 개봉한 <1987>로 193만을 동원하여 총 2,192만 관객을 기록하였다. <공조>에선 형사 강진태 역을 맡아 북한형사 림철령 역을 맡은 현빈과 의외의 케미를 선보였고, 천만 영화 <택시운전사>에서는 주인공 만섭(송강호)과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돕는 광주 택시운전사 황기사 역을 맡았다. <1987>에서는 관객의 입장을 대변하는 연희(김태리)라는 캐릭터를 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맡아, 주연급 조연의 역할을 어김없이 완벽히 소화해냈다.
유해진 배우는 2016년엔 단독 주연을 맡은 <럭키>로 690만 관객을 동원한 것 외에 뚜렷한 결과물이 없었지만, 2017년엔 완벽하게 자신이 흥행배우임을 증명하는데 성공했다. 특히 올해 출연작 중 <택시운전사>와 <1987>은 우리나라의 아픈 현대사를 그린 작품이라 의미도 있는 작품이다. 유해진 배우는 두 작품에서 모두 평범한 소시민 역을 맡아 극의 현실감을 올리는데 일조한다. 그러나 올해 출연작 중 유해진 배우의 가장 매력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은 <공조>라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코믹스러운 영화이기에 그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개봉 예정작으로 롯데엔터테인먼트의 <레슬러>가 대기 중에 있다.
설경구
출연작 :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살인자의 기억법>, <루시드 드림>, <1987>
설경구 배우는 2017년의 작품들로 기존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을 보여 준 것으로 가장 회자가 많이 된 배우이다. 설경구 배우는 올해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으로 93만,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265만, 그리고 <루시드 드림>으로 10만을 기록하여 흥행적으론 그렇게 좋은 성적을 기록하진 못했다. 하지만 <살인자의 기억법>에서의 알츠하이머에 걸린 연쇄살인범 연기와,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에서 조직폭력배 한재호 역을 연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연기를 시작한지 25년이 지난 그는, 두 영화로 디렉터스 컷 시상식에서 올해의 남자연기자상, 대종상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청룡영화상에서 인기상,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특히 <불한당>이 칸영화제 초청됨에 따라 칸의 레드카펫도 밟게 되었다.
<불한당>은 감독의 SNS 논란으로 흥행에 크게 차질이 생긴 영화였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 영화의 열혈 팬클럽 ‘불한당원’이 따로 생겼을 정도로 매력이 있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 중심엔 설경구가 연기한 한재호 캐릭터가 있다. 설경구 배우는 한 인터뷰에서 본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세 작품으로 <박하사탕>(1999), <공공의 적>(2002)과 <불한당>(2017)을 뽑았다. 한동안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다가 15년 만의 자신의 인생 연기를 펼친 설경구 배우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차기작은 <한공주>(2014)의 이수진 감독의 <우상>이 예정되어 있다.
마동석
출연작 : <범죄도시>, <부라더>, <신과함께-죄와 벌>, <특별시민>
올해 가장 예상치 못한 흥행을 한 영화는 <범죄도시>였다. 그리고 이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마동석 배우이다. <범죄도시>는 10월 3일, 당시 추석 연휴를 전후로 규모가 큰 작품들이 연달아 개봉을 하던 시기에 개봉 한 영화였다. 그에 따라 규모에 걸맞은 흥행 배우들의 대결에도 관심이 몰렸었다. 같은 날에 개봉한 <남한산성>의 이병헌과 김윤석, 9월 21일 개봉한 <아이 캔 스피크>의 이제훈, 그리고 외국 배우로는 <킹스맨: 골든 서클>의 콜린 퍼스와 태런 에저튼 등이 한 시기에 모였고, 그 대결에서 마동석 배우는 관객 수 687만을 이끌며 당당히 승리를 거머쥐었다. <범죄도시>는 올해 한국영화 흥행 4위를 기록한 작품이 되었고, 마동석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본격적으로 ‘마동석 장르’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러나 마동석 배우는 본인의 이미지를 그저 힘세고 싸움 잘하는 폭력적인 이미지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범죄도시>의 흥행의 여운이 채 가시기 전인 11월 초, 코미디 영화 <부라더>를 통해 본인의 별명인 ‘마요미’의 매력을 뽐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매력이 통하여, 영화 시장에서 비수기로 불리는 11월에, 총제작비 30억 원대의 비교적 규모가 작은 작품으로 149만 관객을 동원하였다. 손익분기점 관객 수가 100만 명이었던 걸 감안하면 꽤 훌륭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비스티 보이즈>(2008), <퍼펙트 게임>(2011),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2012) 등에서 인상적인 조연으로 활약하다, <이웃사람>(2012)을 통해 백상예술대상에서 남자조연상을 받고, <베테랑>(2015)에서 아트박스 사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를 만들어 낸 후, <부산행>(2016)에서 첫 천만 영화를 찍은 마동석 배우는 2017년 본인 주연의 두 작품으로 다른 배우들과 확실한 차별성을 갖춘, ‘대체 불가능한’ 배우가 되었다. 최근 천만 영화 반열에 오른 <신과함께-죄와 벌>의 마지막에 잠깐 얼굴을 비추며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올리는 역할을 한 마동석 배우. 속편인 <신과 함께> 2편은 올해 여름에 개봉 예정이고, 그 외에 마동석 본인이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로 알려진 <원더풀 라이프>, 역시 10년 전부터 준비해왔다고 밝힌 팔씨름 선수가 주인공인 <챔피언>이 올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진선규
출연작 : <범죄도시>, <특별시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남한산성>, <꾼>
<범죄도시>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배우는 사실 이 배우가 아닐까 싶다. 진선규 배우는 <범죄도시>에서 조선족 폭력배 위성락 역할을 맡아 어느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악당 연기를 선보여, 자칫 다른 한국상업영화들과 비슷해 보일 수 있는 영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리하여 영화를 보고 나온 관객들 모두에게 ‘저 배우 누구야?’라는 궁금증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사실 진선규 배우는 이미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여러 영화에 얼굴을 비춘 바 있는 배우이다. 연기를 시작한지 벌써 15년이 된 진 배우는 올해에도 <특별시민>,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남한산성>에 출연해 묵묵히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쌓고 있었다. 그러다 우여곡절 끝에 출연한 <범죄도시>로 그는 2017년 제38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당시에 했던 수상 소감으로 큰 화제를 모았었다. 또한 MBC <무한도전>에서 2017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어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기도 한 그는 이미 차기작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김윤석, 주지훈 배우가 주연인 <암수살인>과 이정재, 박정민 배우가 주연인 <사바하>다. 2018년 역시 작년처럼 인상적인 조연을 선보인 후, 빠른 시일 내에 그가 주연인 영화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그 외에 주목할 만한 배우로 이제훈 배우가 있다. 이제훈 배우는 6월 <박열>과 9월 <아이 캔 스피크>로 대박까진 아니지만 중박 이상의 흥행을 기록하였고, 연기 또한 본인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여 두 편 모두 화제의 작품에 오르게 하는데 기여하였다. 특히 <박열>의 최희서 배우와 <아이 캔 스피크>의 나문희 배우는 각 작품으로 국내 여러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나눠가졌는데, 그 두 배우의 파트너가 이 배우였던 것이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차기작으로 충무로에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만들어 준 작품인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그리고 함께 출연한 박정민 배우가 합류했다고 알려진 <사냥의 시간>이 준비 중이다.
또 한 명의 주목할 만한 배우는 고 김주혁 배우이다. 작년 10월 안타까운 소식으로 세상을 떠난 김주혁 배우는 세상을 떠나기 불과 며칠 전, 서울 어워즈에서 <공조>로 데뷔 20년 만에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었다. 김 배우는 <공조> 뿐만 아니라 <석조저택 살인사건>에서도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선보여 앞으로 그의 연기 변신이 기대되는 상황이었어서 그의 소식이 더 안타까움을 자아냈었다.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소식이 있긴 하다. 2월 개봉을 앞두고 있는 <흥부>와 올해 개봉 예정인 <독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하지만 그 뒤로는 더 이상 그의 신작을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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