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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리틀 포레스트> : 대책 없는 아름다움에 대하여

 

 

 

리틀 포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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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김태리)은 임용고시에 떨어졌다. 아마 첫 시험은 아닌 걸로 보이고, 심지어 같이 준비하던 남자친구는 붙어버렸다. 혜원은 남자친구에게 작별인사도 없이 고향인 시골 마을로 내려간다. 휴식을 위해 내려간 고향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엄마가 아닌, 엄마에 대한 기억이다. 혜원의 엄마는 혜원이 수능을 본 후, 편지 한 장만을 남긴 채 홀연히 떠나버렸다. 그 후로 혜원의 목표는 보란 듯이 잘 살기였다. ‘두고 봐였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에서 혜원은 불현 듯 떠오르는 기억 속 엄마에게 제발 내 머릿속에서 나와 달라부탁한다. 엄마의 영향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리틀 포레스트>는 시종일관 아름답고 완벽한 것들만 보여준다. 이제 우리나라에 더 이상 존재하는지 의문인 사계절은 굳이 자막을 치지 않았어도 알아볼 수 있었을 정도로 너무나 뚜렷하게 나오고, 햇살은 어느 때나 혜원과 친구들을 아름답게 비추며, 토마토, 밤 등 모든 과일과 농작물은 실하디 실하다. 심지어 반려견 오구마저도 어딘가에서 매일 케어를 받는 듯 예쁘고 깨끗(?)하다. 이런 아름다움은 <리틀 포레스트>라는 영화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나, 하지만 동시에 반감을 들게 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혜원의 엄마(문소리) 역시 비현실적인 캐릭터이다. 그녀의 요리는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고, 혜원의 어떤 고민에도 유명한 멘토들처럼, 마치 혜민 스님이나 유시민 작가처럼 현답을 제시한다. 실제로 혜원의 엄마가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혜원의 기억 속의 엄마가 뭔가 대단한 존재로 남아있는 것일 수도 있다. 중요한건 그게 그런 엄마를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삶에 지칠 때 쉬러 갈 시골 집이 없는 우리에게, 시골이 있어도 이 영화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이 영화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이렇게 대책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 준 이유는 무엇인가. 솔직히 이 아름다움에 반해 이 영화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영화는 끝까지 그 이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누군들 토마토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열매를 맺고 싶지 않을까. <리틀 포레스트>는 관객들을 아무렇지 않게 영화 속에 던져 놓는다. ‘우리라는 존재는 가만히 두면 잘 자라지 못하는 걸 알면서도, 충분한 햇빛과 수분, 영양가 있는 토양 없이는 자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하면서도, 그냥 우리를 하나의 아름다운 세계에 무심코 던져버린다. 아무런 고민이 없다. 그 고민의 부재만큼, 영화관을 나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을 맞닥뜨리면 머리가 아파온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나는 충분한 햇빛과 수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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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선 별이 잘 보인다. 밤하늘의 별을 보던 혜원(김태리)은 뭔가를 깨닫고 서울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함께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남자친구만 붙어버리는 사태(?)가 벌어지자, 아무 말 없이 고향으로 내려와버린 혜원이다. 남자친구는 기다렸다는 눈치다. 혜원이 할 말이 있다고 하자 헤어지자고?”라 한다. 하지만 혜원은 다른 말이 하고 싶었다.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말이 있었다. 합격을 축하한다고 말한다. 자존심을 내려놓는다, 가 아닌 자존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혜원의 마음속에서 사라진다. 합격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