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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플로리다 프로젝트> 무니와 핼리의 소박한 평화를 빌며

플로리다 프로젝트 Florida Project

 

 

(스포 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디즈니랜드. 꿈과 희망, 그리고 미래를 상징하는 이 거대한 랜드마크 인근에는 디즈니랜드와 못지않게 화려한 색을 지니고 있는 모텔들이 있다. 이름 역시 화려하다. 무려 매직캐슬(Magic Castle)’ 그리고 퓨처랜드(Future Land)’. 온갖 어여쁜 단어들만 골라 선택한 듯한 이 이름들은 타지 관광객들이 그 이름만 보고도 혹해서 예약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이름들이다.

 

 

감독이 이 세계를 비추는 방법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모텔은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이 모텔은 관광객들이 임시적으로 머물다 떠나가는 곳이 아니라 거주민들이 살고 있는 의 기능을 하고 있다. 무니(브루클린 프린스)와 스쿠티(크리스토퍼 리베라)는 말하자면 이 모텔의 골목대장이다. 모텔에 투숙하고 있는 모든 고객들의 신상정보를 모조리 꿰고 있으며, 새 친구인 젠시(발레리아 코토), 그리고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에게 이를 하나하나 설명해주기도 한다.

 

 이 모텔은 분명 수상한 구석이 있지만, 영화는 얼마간 이를 긴가민가하게 만든다. 모텔의 외관은 누가 봐도 예쁜 색으로 칠해져있고, 그곳을 누비는 아이들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인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앞뒤 재지 않는 행동들은, 이 공간을 지극히 정상적이고 아무 문제없는 곳으로 보게 만든다. 매직캐슬의 구석구석을 알려주던 무니는, 마지막으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 방을 소개한다. 하지만 1초 만에 자신의 말을 취소하고 또 다시 사고를 치고 만다.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초반부는, 이 영화의 홍보문구가 말하듯 디즈니월드보다 신나는 무지개 어드벤처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느낌을 준다. 아이들이 사고를 치고 어른들이 수습하는 그런 이야기, 또는 아이들의 성장기, 혹은 아이들과 악덕 모텔 매니저의 우정. 그에 따라 숱한 그저 그런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하지만 영화는 자신이 그런 영화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아주 서서히 보여준다. 그 차별점을 섣불리 전시하거나,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해냈다는 사실에 취한 감독들처럼 자랑하듯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감춘다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아이들의 시선으로 영화를 전개한다는 것 자체가 이를 감추고 싶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런 감독의 태도는 박수 받아야하는 태도이다. “나는 이 정도알고, ‘이 만큼다르지만, 이를 자랑하지는 않겠다.” 사회의 어두운 곳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지녀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그 태도에 입각해 션 베이커 감독은 특별히 자극적인 사건을 넣지 않는다. 마치 배우들을 그냥 이 세계에 풀어 놓은 듯한 연출. 감독은 흡사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연출로 영화 러닝타임의 절반 이상을 관객들이 영화 속 플로리다에 빠져들게 만드는데 할애한다.

 

 

윌렘 대포가 연기한 바비, 감독의 페르소나

 

 

 

 

 다시 이 모텔의 수상한 점들을 얘기해보자. 이 모텔은 한 신혼부부가 내리자마자 잘못 예약했음을 직감하는 모텔이다. 이 모텔은 이곳에서 신혼 첫날밤을 보내야한다는 사실만으로 신부를 눈물 짓게 하는 모텔이다. 시도 떼도 없이 헬기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며, 복도를 비추는 야간등이 겨우 켜지는 시간에, 건물 반대편에서는 폭죽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다. 제빙기와 세탁기가 몇 주 동안 고쳐지지 않는 곳이며, 엘리베이터를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곳이다. 그리고 가까운 곳엔 똑같이 비비드한 색을 가지고 있는 건물들이 폐허가 된 채 방치되어 있다. 이런 암울한 곳을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이 무니와 아이들이고, 반대로 이곳의 현실을 제대로 보게 만드는 인물이 바로 무니의 엄마 핼리(브리아 비나이트)와 호텔 매니저 바비(윌렘 대포)이다.

 

 핼리는 이 땅에 아직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 홈리스 중 한 명으로, 그나마 거처를 마련한 이 모텔에서도 매주 방값을 내는 것이 벅차다. 바비는 그런 홈리스들이 모인 이 공간을,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인 이 모텔을 유지하기 위해서 악착 같이 버티는 인물이다.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가도 가끔은 아이들의 장난을 받아주기도 하고, 칭찬을 받으면 수줍은 미소를 보내주기도 한다. 사실 영화에서 바비는, 딱히 모텔 매니저로서 어떤 특별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구석에 앉아 CCTV 화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핼리의 밀린 방값을 받는 것 정도? 그렇다. 거의 핼리 담당 매니저라고 해도 될 정도로 핼리와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런 바비가 정말로 모텔만을 위해 하는 일은 페인트칠과,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바비는 굳이 덧칠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이 보이는 곳을 덧칠하면서, 모텔 주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관찰한다. 그러다 한 백인 남자가 아이들에게 접근하자 집중하지 못하고 페인트 통을 떨어뜨리기까지 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그 장면 외에 바비가 모텔 매니저로서 일을 했던 장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페인트칠과 아이 보호는 바비가 하는 일의 전부인 것처럼 보이며 바비 역시 이 두 가지 일을 가장 중요시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수영장에 가슴을 노출하고 있던 여인을 제지하는 이유도 아이가 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가정사와, 부서진 제빙기와 세탁기는 절대 고치지않으면서, 이 모텔의 화장을 고치는 것만은 멈추지 않는다. 아마 그것만이, 바비 자신이 이곳까지 몰린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서비스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비록 이곳에 하루살이 인생처럼 살고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 예쁘장한 곳에 살고 있는 기분이 들게 해주려는 것. 그리고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지키는 것. 아마 감독의 페르소나가 반영됐으리라 생각되는 이 캐릭터는, 영화의 마지막에 무니가 떠나게 되자,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세탁기를 고치겠다고 선언한다. 자신의 주요 임무였던 아이 보호를 성실히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반성의 행동으로 읽혔다

 

 

핼리는 좋은 엄마인가 나쁜 엄마인가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사실상 무니의 엄마 핼리가 매주 어떤 방법으로 방값을 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 ‘핼리 방값내기 프로젝트로 봐도 무방하다. 영화에선 핼리 개인의 이야기로 그려지지만, (당연히) 이 계층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는 딱히 큰 줄기의 서사 없이 그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기만 하는, 다시 말하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이다. 하지만 이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속담의 본뜻과는 또 다른 의미로, 혹은 더 심각한 의미로, ‘시간은 곧 금이다’. 만약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낸다면, 내일은 오늘과 같은 삶을 살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핼리는 말 그대로 어떤 일을 해서라도 방값을 마련한다. 허락받지 않은 곳에서 향수를 팔고, 몸을 팔고, 절도까지 한다. 그 방법이 옳냐 틀리냐는 다음 문제이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핼리는 돈을 벌어서, 무니의 안전을 지켜나간다.

 

 그렇다면 핼리는 좋은 엄마인가, 나쁜 엄마인가. 감독은 관객들이 이 문제에 대해 쉽게 판단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핼리가 자신이 번 돈으로 사치부리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핼리는 그렇게 번 돈을 오직 가족을 위하여, 혹은 무니만을 위하여 사용할 뿐이다. 불법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절도를 했다 하더라고, 몸을 팔았다 하더라도, 무니를 위한 일이니 엄마로선 도리를 다 한 것이 아닐까?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질문임에 분명하다. 또 영화의 후반부, 플로리다의 아동보호기관으로 보이는 DCF(Department of Children and Families)에서 무니를 데려가려고 하며 너를 안전하게 해주겠다.”고 하자, 무니는 자신은 이미 안전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안전하다 느낀다면 아무 문제없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무니가 홀로 목욕을 하는 네 번의 장면에서, 남자가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우리는 핼리를 좋은 엄마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다시 한 번, 션 베이커 감독의 페르소나인 바비는 이 질문의 답을 은근히 제시한다. 어느 날 밤, (또 왠지 모르게) 핼리의 방이 있는 3층 난간에서 담배를 피고 있던 바비는 핼리의 방에서 한 남자가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아마 그 후 성격상 CCTV로 다른 남자들이 왔다 감을 수십 번이고 확인하고 고민했을 바비는, 핼리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을 알기에 대놓고 나무라지 못한다. 그저 완곡하게 손님이 있으면 데스크에 등록하라.”고 할 뿐이다. 그런 불합리적인 규칙을 만들어서라도 핼리를 말리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처럼 핼리를 더러운 시선으로 보지는 않는다.

 

 

무니와 핼리의 평화를 빌며

 

 

 얼마 전 이변이 없는결과로 막을 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큰 이변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플로리다 프로젝트>가 작품상 후보에도 오르지 못했던 것이었다. 단지 바비를 연기한 윌렘 대포가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는 다르게 보면 아카데미의 정확한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다. 왜냐면 윌렘 대포가 연기한 바비라는 캐릭터가, 이 영화 그리고 감독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사랑스러운 영화를 기대한 관객들에게 스리슬쩍 그 어떤 영화보다 암울한 현실을 비춰 준 영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의 시선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근래 본 어떤 영화보다 강렬하고 영화스러운 엔딩이었다. 영화 내내 웃음을 잃지 않던 무디가 울음을 터뜨리자, 반대로 영화 내내 끌려 다니기만 했던 젠시가 무디를 끌고 달린다. 이 엔딩 시퀀스는 누가 봐도 상상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젠시가 무디의 손을 잡았을 때부터라고 보기 쉽다. 아까 말했듯 젠시는 항상 끌려 다니기만 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젠시보다 먼저 변한 인물은 무디다. 무디는 어떤 상황에도 웃음을 잃지 않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인 바램이 들어간 이 영화의 엔딩은, ‘무디가 울음을 터뜨리는 때부터가 상상이다.

 

 상상이 아닌 진짜 결말을 상상해본다. 무디가 젠시의 방문을 두드리자 젠시가 나온다. 젠시의 할머니가 말을 하지 못하고 있는 무니를 발견하고 무니를 안아준다. 그리고 무니의 이야기를 듣는다. 상황을 파악한 젠시의 할머니가 함께 무니의 집에 가 핼리를 변호해주고, 다시 매직캐슬은 평화를 찾는다. 이 결말이 터무니 없다고 말 할 사람들에게 되묻고 싶다. 이 영화의 가족들은 이정도의 작은 평화도 바랄 수 없는 건일가.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정말로 소박한 해피엔딩이 아닌가.

 

 

★★★★★

알록달록한 페인트로도 가릴 수 없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