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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4월 24일. 허트 로커/제레미 러너

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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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며칠 동안 계속 학습적인, 뭔가 배워야하는 영화만 보는 게 질려서 기분전환 할 겸, <허트 로커>(The Hurt Locker, 2008)를 틀었다. 애정하는 배우 제레미 러너가 이 영화에서 그렇게 연기를 잘 해버렸다는 소리를 씨네타운 나인틴에서 들은 것 같다.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이제야 보게 됐다.

 

 제레미 레너가 우스워보였던 것은 <어벤져스> 때였다. 온갖 대단한 능력을 선보이는 히어로들 사이에서 그는 너무나 하찮아보였다. 씨네타운 나인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쩌리혹은 쩜오였다. 자신에 대한 이런 평가를 알았는지, 그는 결국 이번 어벤저스에서는 등장하지 않게 됐다.

 

 다음 그를 만나게 된 영화는 <본 레거시>였다. 결과는 역시 아쉬웠다. 그가 연기를 유달리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시리즈는 모두가 알다시피 맷 데이먼의 영화였다. 그는 여기서도 쩌리이자 쩜오였다.

 

 그러다 그를 다시 본 것은 작년 <컨택트>에서였다. <컨택트>에서도 그는 분명 쩌리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에이미 아담스였고, 제레미 레너는 그를 보조하는 역할이었다. 그리고 보조하는 역할에서 그는 빛이 났다. 다시 한 번, 씨네타운 나인틴에서는 제레미 레너를 두고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보조가 제격이다.” “진정한 쩜오다!” 우스갯소리였겠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었다.

 

 내가 제레미 레너를 완전 애정하게 된 것은 <윈드 리버> 때였다. <윈드 리버>는 작년 나의 베스트 영화 중 하나였다. 영화 자체가 매력적인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제레미 레너가 너무 좋았다. 혼자서 새하얀 윈드리버를 버텨내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그는 히어로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홀로 고독하게 서 있을 때, 지구의 히어로가 아니라 작은 동네의 히어로일 때 정말 매력적이었다.

 

 다시 <허트 로커>로 돌아온다. <허트 로커><윈드 리버>에 비견될 만한 제레미 러너의 대표 작품이라 말해도 될 것 같다. 굳이 순위를 나누자면 <윈드 리버>가 더 위긴 하지만. 아무튼 <허트 로커>에서도 그는 혼자다. <허트 로커>는 군대 영화라 기본적으로 한 병사가 홀로 있는 것이 불가능하나, <허트 로커>에서 그는 혼자다. 그 이유는 일단 그가 속해있는 분대가 소수(3)이기도 하고, 또 임무를 수행할 때도 그는 혼자서 방호복을 쓰고 폭탄을 해체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윈드 리버에 못지않은 공포가 깔려있는 바그다드 길바닥에서, 그는 홀로 온갖 공포와 압박을 버텨내는 인물을 연기해낸다. 작품만 잘 고른다면 정말 오래갈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아직 필모가 많진 않았다. 그가 주연한 또 다른 작품인 <아메리칸 허슬>을 곧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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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허트 로커>는 간만에 끊지 않고 쭉 본 영화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카메라였다.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인물을 찍는 도중에 줌인 줌아웃을 한다. 아니 다큐멘터리라기보다는 뉴스의 자료화면 같았다. 그럼으로써 현실감이 증폭된다. 자연스레 집중되며 영화를 끊을 수 없었다. 이야기나 주제는 그리 신선한 것은 아니었다. 전쟁, 폭력에 중독된 한 남자의 비극. 당연히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를 의도한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거 말고, 카메라랑 제레미 러너가 다 한 영화이다. 그래도 별 다섯 개짜리 영화. 쉽게 말하자면 별 다섯 개라는 거다. 별점, 탐탁치는 않지만 참 편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