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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관람. 이놈을 개봉 당일 날 보기 위해 얼마나 맘고생을 많이 했던가. 더 좋은 자리에서 보기 위해, 최대한 다른 관객들이 없을 때, 다른 관객들로부터 관람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고려했었던가. 하지만 그냥 빨리 보고 싶다는 마음이 모든 것을 이겨, 결국 낮 한시 반, 앞뒤양옆으로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영화를 봤다. 돈도 아까워서 그냥 2D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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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역사상 이번 영화만큼 스포일러 방지가 이슈였던 적이 있었을까. 그 때문에 영화 개봉 당일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몰린 것 같다. 영화관들이 죄다 <인피니티 워> 상영관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는데, 웬만한 영화관의 꿀자리들이 대부분 예매되어 있었다. 12시가 지난 지금,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는 개봉 첫날 97만 관객이 드는 대단한 기록을 세웠다. 작년 천만 영화인 <신과함께 죄와벌>은 개봉 첫날 40만 관객이 들었었고, <택시운전사>의 경우 69만 관객이 들었었다. 그렇다고 <인피니티 워>가 천만이 유력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면 <군함도> 역시 첫날 97만 관객이 든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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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고,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은, 영화 개봉 전 그 난리를 쳤던 정도의 스포는 없었다는 거다. 아니 뭐가 스포였던지는 알 것 같다. 하지만 이정도로 요란을 피울 정도는 아니였다는 거다. 이 스포 방지 소동 전부가 마케팅의 일환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어느 정도 이용했다고 확신한다. 어떤 점이 나를 이렇게 의심이 들게 했느냐. 자 이제 여기서부터 이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쓸 예정이다. 아직 영화를 안 본 사람이 있다면, 여기까지만 보고 멈추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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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한다. 여기부터는 스포다. 하도 난리기에, 두 번 강조한다. 어떤 부분이 관객들이 미리 알아서는 안 될 부분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어벤져스 핵심 멤버 여러 명이 ‘사라진다’!”는 사실은 적어도 <인피니티 워>에서는 미리 안다고 해서 영화 관람을 크게 방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물론 누군가 사라진다 혹은 죽는다는 사실이 민감한 부분일 수 있긴 하나,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훨씬 약하다. 왜냐면 어벤져스에는 주인공들이 너무 많으니까. 몇 명 쯤 사라진다고 해서 그게 큰 충격이 아니니까.
게다가 이 부분은 따져보면 영화적으로도 아쉬운 부분이 많다. ‘어벤져스 핵심 멤버들 여러 명이 사라진다.’ 그것도 꽤 많은 멤버가 사라진다. 숫자를 세 보진 않았지만 반 정도 사라지고, 반 정도 남는 것 같다. 근데 냉정히 따져보자. 사라진 멤버들은 사실 ‘핵심’ 멤버가 아니다. 난 이 부분이 제일 실망스러웠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는 사라지지 않는다. 진짜 리얼 핵심 멤버는 버젓이 살아있다. 이 얼마나 오만방자한 마블인가.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아무리 비극적인 비지엠을 깔며 남은 히어로들의 어안이 벙벙한, 세상이 무너진 듯한(진짜 무너지긴 했다) 표정을 보여줘도, 전혀 위기감이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니까 이 영화는 어벤져스 역사상 최악의 악당의 등장으로 인해, 최대의 위기에 처한 어벤저스 멤버들과 지구, 를 보여주기 위한 영화였는데 그 위기가 나에게 전달이 안 됐다. 위기감이 안 와 닿은 또 다른 이유는, 사라진 히어로들이 어차피 다음 편에서 ‘어떻게든’ 살아날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고 봐라. 다음에 사라진 친구들 다시 나타나는지 안 나타나는지. 진짜 맨 처음에 누웠던 로키마저 다시 살려내면 나 어벤져스 시리즈 다신 안 볼 거다. (물론 진짜 안 본다는 뜻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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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인피니티 워>는 아이맥스나 3D나 4D로 보는 것을 권한다. 왜냐면 시각효과라도 봐야하기 때문이다. 그냥 비쥬얼의 스펙터클함만 즐기고 나오면 되는 영화이다. 그 외의 것들은 엉망진창이다. 또 하나 더 얘기해볼까. 일단 제일 나쁜 놈인 타노스가 너무 인간적이다. 다시 말해 별로 안 나쁘다! 그래서 그다지 무섭지가 않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러니까 위기가 안 느껴진다. 심지어 눈물까지 흘리는 타노스다. 마치 사랑을 해본 것처럼. 제일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여기였다. 소울스톤을 얻기 위해선 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대학살을 저지르는 나쁜 놈이 사랑을 할 줄 안다는 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이거야 말로 학살자 미화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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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만화라지만 아쉬운 점이 차고 넘친다. 웬만하면 이런 거 잘 안 따지는데, 어벤져스니까, 마블이니까, 최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와 <토르 라그나로크>, 그리고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 나를 만족시켜 줬었으니까, 더욱 깐깐해질 수밖에 없다. 어벤져스에 원래 이렇게 암유발 캐릭터들이 많았던가. 닥터 스트레인지가 이렇게 멍청했나. 왜 진작 비전의 스톤을 파괴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 문제가 조금 해결될라치면, 갑자기 영웅들은 하나 같이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영웅들도 다 인간이라는 것은 나도 동의하지만, 이번 편에는 극적인 드라마를 위해 너무 그쪽으로 치우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패턴이 너무 뻔하다. 일기라서 생각나는 대로 막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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