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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4월 26일. 영화사 면접/인피니티워 천만/스크린 독과점

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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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수입 배급사 면접을 보다. 서울 모 처에 있는 영화 수입 배급사를 찾아갔다. 이력서를 넣은 지 거의 1주가 넘은 뒤 받은 연락이었다. 한국 영화 시장엔 크고 작은 수입 배급사가 엄청나게 많다고 한다. 그중 금방 자취를 감추는 업체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고. 그러나 오늘 간 곳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 보였다. 사무실이 꽤 넓었고, 직원도 꽤 있었다. 그리고 웬만한 회사답게 회사의 이름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벽에 붙어 있었다. 지금까지 총 두 군데에서 면접을 봤었는데, 그곳에 비하면 훨씬 있어 보이는 회사였다. 들어가고 싶어서 지원한 곳이긴 하지만, 막상 사무실에 들어가 보니 더 들어가고 싶어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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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은 두 분의 면접관, 2:1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분은 보스였던 것 같고, 한 분은 실장이라는 직함으로 보스 분에게 불리었다.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상세히 쓰지는 못하겠지만, 혹시라도 이쪽으로 취직을 생각하고 있는 분들을 위하여 기록을 남긴다. 면접이 끝나고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면접에선 그다지 영화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영화를 얼마나 아는지, 뭐 영화 역사상 위대한 작품이나 감독에 대한 질문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최근에 재밌게 본 영화가 무엇인지 같은 가벼운 질문조차도 하지 않았다. 면접은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 위해 하는 여러 질문들과, 그리고 영어, 영어 테스트가 이어졌다. 이건 그냥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테스트였다. 모든 영화사들이 영어 테스트를 하지는 않겠지만, ‘영화 수입사라면 당연히 외국으로부터 영화를 수입할 테니 영어가 정말 중요했던 것이다. 영어 시놉시스, 영어 시나리오, 비즈니스 메일 작문, 외국 배우의 인터뷰 영상 리스닝까지, 다 하는데 50분이 넘게 걸렸다. 합격이 되든 안 되든 영어는 다시 좀 다듬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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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천만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어벤져스 시리즈 중 천만 관객을 넘은 작품은 딱 한 편이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1049. 최근 작품들을 보면 <블랙 팬서> 538. <토르 라그나로크> 484. <스파이더맨 홈커밍> 725.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 270. <닥터 스트레인지> 544.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 860. 순서가 맞는지, 중간에 몇 작품이 빠졌는지 정확히 확인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이렇다. 어벤져스 시리즈는 웬만한 영화도 기본은 한다. 시리즈가 개봉만 했다 하면 무조건 보는 충성고객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피니티 워>를 위협할 경쟁작이 전.. 없다. 51일 마동석 주연의 <챔피언>(배급 : 워너브러더스), 59일 유해진 주연의 <레슬러>(배급 : 롯데)를 제외하곤 큰 영화가 없다. 게다가 둘 다 코미디 영화로 관객층이 겹치지 않을 것 같다. 이 두 영화의 개봉과는 상관없이 어벤져스를 볼 사람은 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주 16일 비슷한 장르의 <데드풀2>(배급 : 이십세기폭스)가 개봉하지만, 이때쯤이면 이미 가닥이 잡히지 않을까 싶다. 17일 개봉하는 유아인 주연의 <버닝>(배급 : CGV아트하우스), 24일 개봉하는 김주혁 배우의 마지막 작품 <독전>(배급 : NEW) 역시 큰 변수는 못 될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전망이 밝다. 너무나 밝다. 마치 이번에 천만 찍으라고 한국 영화 시장의 모든 관계자들이 합심을 한 것 같다. (한국의) 우주가 천만 영화의 탄생을 기다리는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퀄리티가 아쉽긴 하지만, 딱히 내 인생과는 상관없으니 잘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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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관객의 영화 선택의 다양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언제나처럼 많다. 실제로 개봉 첫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의 스크린수는 자그마치 2461개였다. 작년 스크린 독과점 논란으로 가장 큰 홍역을 치렀던 <군함도>의 경우, 개봉 첫날 2027개의 스크린수로 시작했었고, 그 숫자가 <군함도>의 최대 스크린수였다. 그러니까 2461은 엄청난 숫자인 것이다. 2017년 국내 총 스크린수는 2575개였다. 올해는 좀 늘긴 늘었겠지만, 그래도 거의 90%에 육박한 숫자이다. 당연히 선택의 다양성에 대한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딱히 이에 대해서 불만스럽진 않다. 볼 영화가 없으면 그냥 안 보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다. 영화는 그냥 수많은 문화수단 중 하나일 뿐이고, 영화관은 각자의 최대 이익을 위해 마음대로 영화를 걸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위닝 일레븐만 보유하고 있는 플스방에 우리는 뭐라고 할 권리가 없으며, 아메리카노만 파는 카페에, 내가 좋아하는 뻥이요를 팔지 않는 편의점에, 우리는 뭐라고 할 권리가 없다. 맘에 안 들면 그냥 안 가면 된다. 영화관은 자칭 영화광들을 위하여,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상영시간표를 짜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몇 주 영화관에서 영화를 못 보는 게 그렇게 분노할 일인가.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게중 몇 사람은 분명 나는 영화를 이만큼 좋아해요!”를 자랑하고 있는, 영화광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한다. 정말 다양한 영화를 보고 싶거나, 진심으로 영화 보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리얼 영화광이라면, 영화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낼 시간에 다른 방법을 찾아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을 것이다. 굳이 당신의 분노를 어딘가에 표출하고 싶다면, 영화관이 아니라, 큰 영화가 개봉하는 것이 두려워 이 시기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다른 영화사들을 향하는 것이 당신의 미래 영화 선택권에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단언컨대 영화사들 역시 여러분들의 영화 선택권을 위해 손해를 감수해야 할 의무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