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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는 영화를 봤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1964). 부제부터 재밌다.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내가 어떻게 폭탄을 걱정하는 것을 멈추고 이를 사랑하게 됐는지. 2년 전 부산영화제에서 본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속 단편 무성 영화인 ‘사제 폭탄을 삼킨 사나이’가 떠오르는 제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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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이야기가 재밌다. 전 세계가 핵폭탄으로 절멸된 위기에 빠지게 되는 상황에 그 운명을 맡은 사람들의 면면이 참 웃기다. 그들끼리 하는 대화의 대사도 찰지다. 얼핏 쿠엔틴 타란티노의 향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는 대놓고 핵무기를 반대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만 이야기가 재밌어 그 ‘대놓음’이 거슬리지 않는다. <매드맥스>(2015)를 두고 너무 재밌으니 다 용서할 수 있다, 고 평가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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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가장 놀랐던 것은 배우이다. 피터 셀러스라는 배우가 이 영화의 제목에 있는 스트레인지 러브 박사와, 미국 대통령, 그리고 미친 잭 리퍼 장군의 부하 역을 모두 연기했다. 중요한건 셋 다 이 영화의 핵심 인물이었는데, 그렇게 영화에 자주 나온 사람들이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내가 몰라봤다는 것이다. <핑크 팬더>의 주인공이라는데, 나중에 또 볼 수 있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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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영화를 보게 되면, 영화의 제목처럼 왜 폭탄을 사랑하게 됐는지를 반어적으로 알 수 있다. 비행기 조종사가 마치 로데오 놀이를 하듯 미사일 위에 앉아 떨어지며 짓는 표정이 이를 잘 드러낸다. 그렇다면 이제 제목의 나머지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해석할 차례다. 왜 이 인물이 제목에 올랐을까. Dr. Strangelove. 물론 이 인물이 영화 중 가장 튀는 인물이기는 하다. 독특한 외모, 그리고 더 독특한 화법이 기억에 남는다. 게다가 한 쪽 팔은 제멋대로 움직인다. 입으로는 착한 척 말을 하면서 그 팔은 참을 수 없다는 듯 나치 경례 포즈를 취한다. 가장 튀지만, 이 영화의 메시지를 대표적으로 대변할 인물이 맞는가에 대해서는 좀 의심스럽다. 차라리 잭 리퍼 장군이나, 벗 터짓슨 장군이면 모를까. 아무튼 나는 스트레인지 러브 박사, 이 인물에 매료됐다.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strangelove로 바꾸고 싶었으나 당연히 이미 존재해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박사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진 않으나 매료된 것, 참 이상한 사랑이다. 아마 큐브릭 감독도 인물의 이름이라기보다는 이 이름이 뜻하는 바, ‘이상한 사랑’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그런 얕은 추측을 한 번 해본다. 여러모로 대단한 영화. 내 인생 영화로 기억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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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에서 전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미국의 약점은, 영어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는 단점이다. 미국 사람들만 한 30명 정도 있는 회의장에, 러시아 대사 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는 러시아의 서기장과 러시아어로 대화를 한다. 미국 사람들은 아무도 이를 알아 듣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러시아 대사를 엿 먹이기 위해 몰래 영어로 얘기할 수가 없다. 왜냐면 영어는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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