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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돌아온 즐거운 고전 영화 보기 시간 ^ㅁ^.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전함 포템킨>을 보았다. 무려 1925년에 만들어진 영화. 영화 역사에 대한 이야기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영화이다. 그런 거엔 또 내가 빠질 수 없지.. 하는 마음에 본 영화 <전함 포템킨>. 물론 그런 영화치고 재밌는 영화는 별로 없다. <시민 케인>은 정말 다시 꺼내 보기 싫은 영화였다. 영화 역사에 대해 얘기할 때 항상 맨 위에 오르는 영화이지만, 그렇다고 거짓 감정을 자아내어 그 영화를 ‘빨기는’ 싫다. <전함 포템킨>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흡입력이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는 현재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먼 나라 러시아의 1905년에 일어난 최초의 혁명에 관한 이야기라, 전혀 친숙하지 않고 딱히 귀가 기울여지지도 않는다. 게다가 영화엔 주인공이 없어서, 매력적인 캐릭터에 대한 애정으로 영화를 보는 옵션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럼 이 영화는 대체 왜 유명하냐. 바로 몽타쥬 기법의 여러 예시들을 모범적으로 확립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나에게 그런 것들은 무의미한 것이니 나는 직관적인 느낌으로만 영화를 판단하겠다. 더군다나 이건 내 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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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나의 눈길을 끈 장면들이 몇 있었다. 일단 군중 씬. <7인의 사무라이> 때도 느꼈지만 나는 옛 영화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오면 그게 그렇게 감동적이다. 진짜 저 사람 하나하나가 다 실제 한 명의 인간인 것 아닌가. 한 편의 영화를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이 한 시간에 한 장소에 모여 한 감독의 지시를 따른다는 것. 그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영화란 얼마나 낭만적인 예술인 것인가. <전함 포템킨>은 다루고 있는 것이 ‘혁명’이므로, 그 아름다운 순간이 필연적으로 자주 등장한다. 만약 훗날 ‘촛불 혁명’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그 영화의 감독은 과연 광화문 광장에 모인 그 많은 시민들을 하나하나 진짜 사람으로 채울 수 있을까? 절대 그러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아무리 자원이 풍부해지고 인구가 많아졌다고 해도,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더 그렇게 하기 쉬워졌지만, 더 그러지 못하게 되는 아이러니. 지나친 비약일수도 있지만, 아마 디지털의 폐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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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칭송하는 그 장면 ‘오데사 계단’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이다. ‘오데사 계단’ 씬은 그 명성에 걸맞게 멋있었다. 그리고 무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진군하는 병사들의 발소리가 들리고, 소리치고 절규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릴 정도로 편집이 잘 돼있다. 이게 소위 말하는 몽타쥬의 효과인 것일까? 하지만 사실은 이 장면 하나보단 이 영화 전체가 하나의 몽타쥬라는 느낌을 받았다. 바로 계몽을 위한 하나의 몽타쥬. 선동을 위한 하나의 몽타쥬. 1905년 일어난 혁명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함 포템킨>. 에이젠슈타인은 러시아 혁명 지도부의 요청에 따라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요청이라곤 하지만 왠지 명령으로 들리는 것은 러시아에 대한 나쁜 선입견일까. 어찌 됐든 요청이든 명령이든 간에, 에이젠슈타인은 그것을 완벽하게 수행해낸다. <전함 포템킨>은 러시아 최초 혁명을 완벽하게 기념할만한 영화를 만들었고, 그 영화는 당연히 사람들 마음에 애국심을 심는 기능을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에이젠슈타인은 요청에 따랐을 뿐이다. 그리하여 러시아 혁명을 기념할 뿐만 아니라, 영화 역사의 기념비에도 오를 그런 영화를 만든 것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많이 따라줬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에게도 운이 따르길 바라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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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씬 성애자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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