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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7월 7일. 설리 : 허드슨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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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작년 꽤 핫했던 영화 <설리>(허드슨강의 기적)을 보았다. 이번 필로 3호에 정성일 평론가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신작 <1517분 파리행 열차>에 관한 글을 쓰셨길래, 이스트우드 감독의 근작을 좀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1517분 파리행 열차>는 아직 우리나라에선 개봉되진 않았지만 네이버 영화에서 다운로드 파일을 제공하므로 얼른 보고 정 선생님의 글을 읽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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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리>는 히어로물 영화였다. 추락하는 비행기를 허드슨 강에 안전히 착륙시키는 기지를 발휘하여 155명의 생명을 구한 영웅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 2009년 나쁜 소식들로 우울해진 뉴욕에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영웅. 2001911테러 이후 비행기에 트라우마가 있는 뉴욕 시민들에게 이를 해소시켜 주는 경험을 하게 해준 영웅.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2016, 이 영웅을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환기시킨다. ?

영화를 조금 더 진지하게 접근하게 된 이후로, 내 영화 감상 항목에 새로 추가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타이밍이다. 감독은 왜 이 시점에, 왜 이 타이밍에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설리>에서도 타이밍은 나름 중요한 요소로 사용되어 톰 행크스의 입을 통해 언급되기도 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왜 지금 이 타이밍에 이 영웅을 소환한 것일까. 물론 모든 감독들이 이 타이밍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그냥 상황상 그 타이밍에 영화를 찍는다. 특히 제작비의 문제 때문에. 최근 개봉한 <마녀>를 찍은 박훈정 감독은, 인터뷰에서 <마녀><브이아이피> 이전의 타이밍에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인 여배우 원톱 액션영화에 대한 투자를 받기 어려워 이제야 찍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니까 대부분의 감독들은 타이밍을 맞출 수 없다. 영화를 처음 준비했을 때 떠올렸던 아이디어들을 나중에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나서야 찍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 급의 감독들. 아무 때나 본인이 영화를 찍고 싶을 때 본인의 이름을 말하는 것만으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감독들. 혹은 진짜 하고 싶은 거 맘대로 찍는 감독들의 경우는 다르다. 타이밍이 중요해진다.(Timing matters.) 그래서 다시 처음에 했던 질문.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왜 2016년에 이 영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까. 그가 공화당 열렬 지지자라는 점이 자꾸 답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 영화는 도날드 트럼프가 당선되는 미국 45대 대선 전에 만들어진 영화이다. 그렇다고 <설리>가 도날드 트럼프를 그 영웅으로 보며, 그를 지지하는 영화인 것은 아니다. 영화는 다만 미국 정통 보수주의자들이 제시하는 영웅의 한 예를 보여주는 것뿐이다.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공을 모두에게 돌리는 그런 영웅.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그 참사 때 보수 진영이 보여줬던 그런 행동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그래서 45대 대선의 결과가 도날드 트럼프였음에도 불구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 관점을 비난할 수 없었다. 좋은 타이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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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걸 떠나서 영화 자체도 좋았다.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러닝타임 내내 흡입력이 있었고, 군더더기도 없었다. 무엇보다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이야기를 시간 재배치를 활용해 잘 늘렸다. 결코 장편 영화 한 편 분량이 나올 소재가 아니었을 텐데, 참 영리한 활용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가 보여준 퀄리티 이상으로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는데, 이는 어쩔 수 없이 문득 문득 떠오르는 세월호에 대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전 세계에서 아마 한국인만 이 영화를 더 다르게봤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인 중에 비행기에서 맨 마지막으로 탈출하는 캡틴 설리를 보며, 세월호에서 맨 먼저 탈출한 선장이 떠오르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핵심 원인이 선장은 아닐 테지만, 아무래도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울컥했던 부분은 이 부분이었다. 사건이 끝난 후 호텔로 돌아온 설리. 그와 함께 사건을 겪은 부기장은 옷을 목욕 가운으로 갈아입었지만 설리는 아직도 유니폼을 입고 있다. 호텔 관리자는 두 분께 감사를 표하며 원하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말하라고 한다. 그러자 설리는 이 유니폼을 내일까지 드라이클리닝 해줄 수 있냐고 물어본다. 이 말을 들은 호텔 관리자는 지금 장난하냐며, 그 정도는 물론이고 뿐만 아니라 이 호텔을 통째로 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한다. 이때 눈물이 왈칵 나올 뻔했다. 놀랍게도 씨네타운나인틴을 듣는데 이승훈 피디 역시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나왔다고 말해서 신기했다. 나는 존경을 받아야 할 인물이 그에 마땅한 존경을 받을 때,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할 인물이 그에 걸맞은 감사 인사를 받는 모습을 볼 때 감동받는다. 그래서 나는 팀 프로젝트와 같은 것을 했을 때 정말 고마운 일을 한 팀원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며, 마찬가지로 누군가 나에게 고맙다고 했을 때 되게 고맙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타이밍과 별개로, 이 영화가 정말 좋은 것은 이 영화에게 고마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감사받을 일을 한 사람에게, 사람들이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영화이다. 지금 이 사람 때문에 이 조직이, 이 사회가 잘 굴러가는 건지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인생을 살기에 바쁜 사람들을 향해 잠시 주목해달라고 말한 뒤, 이 영웅을 앞으로 부른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을 이러이러한 일을 한 사람입니다. 모르셨죠? 바로 이 사람 덕분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겁니다. 모두 이 분에게 박수를!” 우리나라에도 이런 영화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런 실화가 있어야 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다시 한 번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수색에 참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난을 받았던 고 김관홍 잠수사님께 박수를 보낸다. 혹시 내가 더 알아야 할 영웅이 있다면 누군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