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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꼭 일찍 일어나서 <변산>을 봐야지, 하고 잠에 들었는데 눈을 뜨니 또 시간이 지나버렸다. 빨리 보고 글 쓰고 싶었는데, 아쉽다. 대신 오늘은 지난 3일 쉬는 날 보았던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시즌2를 좀 더 보았다. 4화까지 보았는데 분명 뭔가 기묘한 매력이 있다. 사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선호하지 않는다. 현실적인 이야기 혹은 적당한 특이 설정 하나 정도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로스트> : 무인도, <워킹데드> : 좀비, <왕좌의 게임> : 여러 종족이 살고 있는 중세 시대, 정도가 딱이다. 사실 <로스트>에서도 그 이상한 회오리? 같은 존재는 마음에 들지 않았고, <왕좌의 게임>에서도 언데드의 존재가 거슬리긴 했었다. <웨이워드 파인즈>(Wayward Pines)의 설정도 참 매력적이었다. <기묘한 이야기>가 <웨이워드 파인즈>랑 어느 정도 비슷하다. 한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둘 다 정부 급의 조직이 배후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기묘한 이야기>로 돌아와서. <기묘한 이야기>도 초능력을 써대는 것까지는 참을 만 했으나, 이상한 몬스터까지 등장하는 것이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었다. 그럼에도 드라마가 계속 ‘봐지고’, 한 에피소드가 끝날 때 곧 바로 다음 편을 재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그래도 이야기가 재밌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원래 아이들의 이야기도 딱히 좋아하지 않는 것까지 감안하면, 진짜 이 <Stranger Things>의 thing이 something이긴 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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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를 보고 기록해 둔 대사 하나가 있다. 코케로 향하던 감독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친구의 집을 찾아 헤매던 아마드 푸어의 마지막 친구가 되어줬던 할아버지 루히를 발견하고, 그를 차에 태운다. 감독의 아들은 루히 할아버지에게 영화에선 할아버지가 더 늙어보였었다고 말한다. 할아버지는 감독이 자신이 더 늙어 보이길 원했기 때문에 분장을 하고, 가짜 혹을 붙였던 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불만을 토로한다. 그 불만은 할아버지의 입을 통해서 나오고 있고, 그 옆에 키아로스타미의 대역이 이를 듣고 있지만, 이 모든 상황은 진짜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니 사실 루히 할아버지의 주장은 키아로스타미의 주장일 것이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을 늙고 추하게 만드는 게 그게 무슨 예술이니. 실제보다 아름답게 나와야지. 그래야 예술이 가치 있는 거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그러니까 인생을 아름답게 그림으로써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을 영화라는 예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굳이 구린 것을 구리다고 적시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 같다. 하지만 나는 구린 것이 구리다는 것을 정확히 알 때, 그제야 발전의 가능성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헛된 희망을 주는 것보단,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 그러나 그것이 내 호감도를 떨어뜨린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까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는 모두가 좋아하는 것 같다. 나쁜 소리 안하고 좋은 것만 말하는 푸근한 할아버지.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다큐멘터리처럼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서 그의 영화는 위대하다. 그냥 그곳에 우리를 데려가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줌과 동시에 따뜻한 희망을 주는 감독. 내가 만약 영화를 만들게 된다면,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최근 이 감독의 영화들을 보며 자주 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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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미드를 보며, 동시에 유시민 작가의 책을 읽고 있다. 신작 <역사의 역사>. 영어로는 History of Writing History. 정확히는 ‘역사 서술’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쉽지 않은 주제지만, 역시 유시민 선생님의 글이라 조금만 집중하면 쉽게 읽히는 편이다. 책 이야기는 나중에 책을 완독한 이후에 할 수 있으면 해보려고 한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를 보는 요즘이어서 그런지, 유시민 선생님과 키아로스타미가 겹쳐 보인다. 물론 티비 출연 이후의 유시민 선생님을 말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키아로스타미의 영화처럼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게 한 뒤, 마지막엔 희망적인 메시지를 놓치지 않으며, 그 와중에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신다. 유시민 작가님은 진짜 지금도 여전히 그 능력에 비해 너무나 저평가 받고 있는 지식인 중 한 명이다. 한 쪽 진영에서 너무 큰 목소리를 냈던 부작용일까. 작가님이 점점 더 정치와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업이 작가이시니, 작가로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싶은 것은 인간의 당연한 본능일 것이다. 진정 그것이 정치와 멀어지려는 이유시라면, 영영 정치에 돌아오지 않으시더라도 나는 선생님을 응원할 거다. 유시민 작가님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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