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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지그재그 3부작 완성.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봤다. 이제야 뭔가 퍼즐이 맞춰진다. 감독은 1987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완성하고, 1990년 다음 영화 <클로즈 업>을 찍는다. 그러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찍었던 마을에 대지진이 나서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의 주인공 두 소년의 생사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스탭들과 함께 그들을 찾아 나선다. 영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찍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자신의 친구의 집을 찾아 헤매던 아이’의 집을 찾아가는 영화이다. 만약 자신이 직접 찾아가는 과정을 다른 촬영 감독이 찍었다면 이는 다큐멘터리였을 것이나, 감독은 그 대신 자신의 역할을 할 대역을 사용한다. 그래서 영화에서 배우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실제로 언급하여도, 배우는 실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아니기에 이 영화는 픽션의 자리에 머문다. 하지만 이것이 좀 더 복잡해지게 되는 것, 은 3부작의 마지막 <올리브 나무 사이로>의 존재 때문이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사이로 들어간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의 촬영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담은 영화이다. 실제로 <올리브 나무 사이로> 시작에는, 한 사람이 나와 자신이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를 찍은 감독이라고 자신을 직접 소개한다. 하지만 그 역시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실제 본인은 아니다. 또 <올리브>, <내친구>, <그리고 삶> 순으로 영화를 본 나는, <그리고 삶>의 특정 장면에서 <올리브>에서 나오는 장면을 발견하고 반가워했다. <그리고 삶>에서 우리는 영화의 OK 컷만을 볼 수 있지만, <올리브>에서는 그 장면의 NG 컷을 볼 수 있다. 그리고 NG라고 외치는 감독의 모습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는 전부 영화(픽션)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들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애매하게 넘나드는 솜씨에 대해 극찬한다. 나 역시 감독의 이런 발상이 너무나 기발하다고 생각하고, 정말 세계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이 오리지날하며, 영화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장치라고 생각하지만, 이정도 극찬할 정도인가는 아직 의문이다. 아직 내가 식견이 부족하니 ‘아직’이라는 단서를 달아놓는다. 반면 내가 극찬하고 싶은 것은 이 감독의 영화 그냥 그 자체다. 이 감독의 영화가 현실과 픽션을 헷갈리게 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하나의 영화에 대한 평가가 아닌 여러 영화를 연관지어서 내리는 평가이다. 나는 이 감독의 영화 세계보다 영화 각각 그 자체가 좋다. 그래야 더욱 더 이 영화들의 엔딩씬들이 더 고평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충분히 고평가 되고 있지만. 또한 감독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세 영화로 발전시킨 것이, 진지하게 ‘영화라는 예술’에 대한 얘기를 하기 위한 의도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감독은 그때그때 눈길을 주고 싶은 곳에 눈길을 준 것 뿐이다. <내친구>의 소년이 걱정되어 <그리고 살>을 만들었고, <그리고 삶>의 그 소년의 사연이 눈에 띄어 <올리브>를 만든 것이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아마 <그리고 삶>을 찍다가 자꾸 NG를 내는 소년이 궁금해져서 얘기를 듣다 발전시킨 영화인 것 같다. 어디까지가 영화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모르겠는 경험은 그러니까 감독이 실제 감독 역할을 본인이 연기했을 때 더 효과적이다. 나는 정가영 감독의 영화를 보고 이를 많이 느꼈다. 특히 최근 단편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에서. <너와 극장에서 – 극장에서 한 생각>에서도 약간. 언제 정감독의 다음 작품을 보고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조인성을 좋아하세요>는 정말 강추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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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니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자체에 대해서 얘기를 못했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삶’을 그리는 영화이다. 지진이 난 지역. 상황은 처참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 상황만큼은 다큐멘터리에 가깝다. 그대로 찍은 것 같고,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에서 봤던 것처럼, 사람들은 지나가는 카메라를 인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가는 카메라를 빤히 쳐다본다. 하지만 어쨌든 이곳에서도 사람들은 다음 삶을 준비한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집이 없는 상황에서도 월드컵을 챙겨본다는 것이다. 마침 지금은 월드컵 시즌. 그 당시 이란의 월드컵 열기는 대단해보인다. 90년 월드컵. 지진이 나던 날 브라질과 스코틀랜드의 경기가 있었다고 했고, 영화가 진행되는 날에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찾아보니 이는 16강 전이었고, 아르헨티나가 1:0으로 브라질을 이긴 것으로 나온다. 잡담이었다. 아무튼 영화는 관찰자 시점으로, 삶의 의지를 보여준다. 아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질긴 것인가. 마지막 장면, 끝없이 이어지는 지그재그 길을 힘겹게 올라가는 차를 보며, 그리고 그 차가 그 차를 밀어줬던 한 행인을 태우고 가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나 역시 질기게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되새겼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이어서 정말 멋진 엔딩.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정말 그 누구보다 멋진 엔딩, 그리고 멋진 오프닝 크레딧 장면을 만드는 것 같다. <클로즈 업>, <텐> 정말 제대로 감상하고 싶다. 누가 볼 수 있는 경로를 알고 있다면 좀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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