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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4월 4일. 레이디버드/그레타거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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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등포CGV에서 <레이디 버드> 관람. 이로써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 영화는 <다키스트 아워>를 제외하고 다 보게 됐다. 찾아보니까 2015년부터 4년 동안 작품상 후보 영화를 한 편만 제외하고 다 본 걸로 돼있다. 2017<펜스>, 2016<브루클린>, 2015<사랑에 대한 모든 것>. <사랑에 대한 모든 것>은 얼마 전 타계한 스티븐 호킹 박사를 다룬 영화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 또한 얼른 봐야겠다고 생각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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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디 버드>는 젊은 여성 감독 그레타 거윅이 만든 젊은 여성에 관한 영화이다. 젊은 여성이라기보다는 10대 여성. Girlhood. 상당부분 자신의 실제 경험이 들어가 있다. 영화의 배경은 캘리포니아 주의 새크라멘토(sacramento)라는 작은 도시인데, 그레타 거윅 역시 그곳 출신이다. 그녀가 다닌 세인트 프란시스 고등학교는 가톨릭 여고인데, 영화의 주인공 크리스틴(시얼샤 로넌) 역시 가톨릭 여고를 다니고 있다. 또한 영화는 크리스틴이 뉴욕의 대학교로 진학하며 마무리 되는데, 그레타 거윅 역시 뉴욕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했다. 리처드 렝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2014)의 여성판. 아니 그냥 걸후드라고 불러도 될 정도의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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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보이후드>와 비교하기엔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있다. 우선 전체적으로 <레이디 버드><보이후드>에 비해 영화적이고, 영화 같다. 이는 <보이후드>가 영화 외적으로 가지고 있는 현실성, 한 아이의 12년을 실제 12년 동안 찍었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차이가 느껴진다. <보이후드>는 그 기간이 12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인 순간이 없다. 허나 <레이디 버드>는 그 기간이 1년 미만에다가, 러닝타임이 짧은데도 불구하고, 그 시간들이 영화에 필요한 자극적인 순간들로 가득하다. 매일이 영화 같은 순간이고, 매일이 명대사다. 그리고 그 대사와 장면들이 대중적이라, 결론적으로 모두가 만족하고 모두가 상처 입지 않을 그런 영화가 되었다. 허나 현실은 그렇지 않으므로, 오늘도 난 상처투성이이므로, 높은 점수를 주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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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민감한 이야기일수도 있겠지만, 이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에 오르고, 골든글로브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의 작품상을 받은 요인에는 다소 여성 감독 영화에 대한 응원 프리미엄이 있지 않나 싶다. 아카데미에서만 비교해보자.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 <다키스트 아워>, <겟 아웃>, <팬텀 스레드>, <쓰리 빌보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덩케르크>, <더 포스트>. 안 본 <다키스트 아워>랑 내가 생각해도 별로였던 <겟 아웃>(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겐 인정받은) 제외하고, 남은 다른 영화들과 <레이디 버드>가 정말 영화적으로 비슷한 성취를 이룬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감독상 후보로 보면 이는 더 명확하다. 기예르모 델 토로, 조던 필레, 폴 토마스 앤더슨, 크리스토퍼 놀란, 그리고 그레타 거윅. 난 여성 영화인이 영화 현장에서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로 반대한다. 100% 차별 없는 평등을 원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여성 감독을 응원하지 않는다. 똑같이 남성 감독도 응원하지 않는다. 난 그저 좋은 감독을 응원할 뿐이다. ‘그레타 거윅이 좋은 감독이 됐으면 좋겠다.’ 이번 <레이디 버드>와 그레타 거윅이 아카데미 작품/감독상 후보에 오른 것은 그런 의미에서라고 생각한다. 감독 본인께서도 절대 자만하지 않고 앞으로 좋은 영화를, 정말로 <보이후드>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을 영화를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난 이 감독을 열렬히 지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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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말했지만 좋은 영화이긴 하다 ^^ 재밌게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