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4월 7일. 다음 침공은 어디/마이클 무어/화씨911

4/7

 

-

 요즘 너무 헤비한 영화들만 봐서, 머리를 식히고자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Where to invade next, 2015)를 봤다. 이게 머리를 식힐 영화가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 생각 없이, 막 이게 무슨 상징인지 뭘 의미하는지 등의, 감히 감독의 머릿속을 들어가 보려는 노력을 할 필요 없이, .. 볼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보기 편했다. 그냥 무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는 점에서, 머리를 식힐 수 있었다.

 

 내가 봤을 때 이 감독은 상당히 친절한 타입이다. 초등학생을 가르쳐도 잘 가르칠 것 같다. 게다가 스토리텔링 능력까지 뛰어나다. 다른 나라를 침공’(invade)하여 우리나라가 갖고 있지 않은 제도적 장점을 훔친다는 설정이 찰지다. 비장하게 성조기를 들고 가서 적국의 영토에 깃발을 꽂고, 아직 상황극에 덜 이입한 채 웃고 있는 상대방에게 항복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유머도 놓지 않는다. 아니 이 상황 자체가 이미 하나의 큰 유머이다. 그래서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너무 유쾌하다. 내가 본 다큐 사상 제일 시간이 빨리 간 다큐였다.

 

-

 무어는 이 영화에서 총 아홉 개의 무언가를 훔치는데, 아홉 개가 전부 부러웠지만 가장 부러웠던 것은 슬로베니아의 대학무상교육이었다. 영화를 보다 잠깐 멈추고 슬로베니아 대학 입학 방법을 네이버에 찾아보기도 했다. 만약 바로 방법이 나왔다면 당장 새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또 이탈리아의 엄청나게 긴 유급휴가가 기억난다. 그곳 사람들은 직업이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것 같다. 그리고 삶이 여유로우니 당연히 가족도 화목해 보인다. 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독일. 항상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반성하고 되새기는 그들이 멋있었다. 그리고 무어는 마지막에 베를린 장벽 앞에 가 친구에게 이 벽이 무너질 줄 알았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이 벽이 허물어졌을 때 느낀 감정은, 이게 됐으니 이 세상에 안 될 것은 없다, nothing is impossible을 깨달았다고 한다. 38선 휴전선이 허물어지는 것도 음 멀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

 어제 일기에 쓴 <올드보이>의 칸영화제수상 일화에 <올드보이>가 그 해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었다고 썼었다. 정말 우연히도 오늘 본 <다음 침공은 어디>의 감독 마이클 무어의 영화 <화씨 9/11>(Fahrenheit 9/11, 2004)이 그해 황금종려상을 탔었다. 이 영화가 없었다면 <올드보이>가 황금종려상이었다는 거다. 막 골랐는데 이렇게 들어맞다니. <화씨 9/11>도 어릴 때 본 영화이니 한 번 더 봐야할 것 같다. 상 받았다니까 너무 너무 달라 보인다.

 

 

 물론 그가 침공한 이 나라들이 전부 장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해 너무 좋은 부분만 보여주는 것 아니냐, 라는 비판이 올 수도 있다. 그것까지 예상한 마이클 무어는 이 한 마디로 간단하게 그런 비판을 구렁이 담 넘듯 넘어간다. 영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