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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5월 25일. 스틸 라이프(2)/삼협호인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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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틸 라이프>6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당연히 한국 영화 평론가들에게도 호평을 받았다. 많은 평론가들이 높은 별점을 주었고, 이동진 평론가 역시 별 다섯 개 만점, 그리고 이 영화는 완전하다라는 평을 남겼다. 그는 글에서 변한 것을 찍으면서 변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이야기한 영화라고 썼다. 아주 잘 정리했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의 한 줄 평은 그냥 단순 감상을 표현한 것으로 아무리 이 영화가 완전했다고 해도 별로였다. 그는 ‘<스틸 라이프>는 예술이란 다가올 것들을 찬양하며 흥청대는 권주가가 아니라 사라져가는 것들을 필사적으로 불러내는 초혼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귀한 영화다.’라며 글을 마무리했는데 이 부분을 요약해서 한 줄 평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권주가가 아닌 초혼가.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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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일 평론가 역시 이 영화를 극찬했다. 여태껏 본 그의 글 중에 이정도로 한 영화를 극찬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는 <삼협호인>(원제)21세기 중국영화 중 왕빙의 <철서구>와 함께 가장 좋은 영화라고 썼고, <삼협호인>이 말만 들어도 최고의 영화들인 구스 반 산트의 <게리>, 허우샤오시엔의 <밀레니엄 맘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10>,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 필립 가렐의 <평범한 연인들>만큼 멀리 나아간 영화라고 평했다. 특히 이 영화의 마지막 신에 대해 10년간 본 영화중에서 최고의 라스트신이라고 했는데, 나는 글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의 최고의 라스트신 리스트가 궁금해졌다. 아무튼 오늘 내 일기는 씨네21에 작성된 정성일 평론가의 <스틸 라이프> 글을 인용해서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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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지아장커 감독이 꽤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냥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 진짜 멋있는 사람. 이미 이런 영화들을 만든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있긴 하지만, 그가 인터뷰를 통해 직접 한 말들을 통해 이를 더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베니스영화제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황금사자상 수상이 생각보다 늦은 것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그의 초기작 <플랫폼>이 큰 파장을 일으키며 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러지 못해 섭섭했었다고 했다. 이건 힙합이다. 마치 최근의 슈퍼비 같은 발언. 왜냐면 <삼협호인>은 그의 다섯 번째 작품에 불과하고, 그 당시의 나이가 서른여섯 살이었기 때문이다. 서른여섯에 황금사자상을 받으면서 늦었다고 말하는 건 엄청난 자신감이다. 이는 어찌 보면 자만으로 보여 재수 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말하기엔 생각도 꽤나 깊었다. <삼협호인>이 발표될 당시는 영화 촬영의 과도기였던 것 같다. 지금은 모두가 거의 무조건 디지털로 영화를 찍지만 그때는 영화를 필름으로 찍냐 디지털로 찍냐를 선택해야하는 시기였다. 그는 <삼협호인>을 디지털로 찍었고, 그 이유에 대해 현재 중국 사람들은 디지털의 세계 속에 살기에 필름보다 디지털로 찍을 때 더 사실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말이 더 인상적이다. ‘영화의 모든 변화는 테크놀로지의 변화에서 오는 것인데, 테크놀로지의 변화는 영화가 아니라 과학 기술의 변화에서 온다. 그리고 그 기술이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만이 영화가 세상의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방법이다.’ 뭔가 영화라는 예술의 본질을 파악한 말 같았다. 필름도 물론 좋고 의미 있겠지만, 필름으로 찍은 영상이 과연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일까. 누구라도 이 감독의 깊은 생각을 안다면, 절대 그의 자신감을 재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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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FO가 나타나는 장면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남아 있다. 이 장면은 폐건물이 마치 로켓처럼 발사되는 장면과 세트일 것이다. 나는 이 장면이 <염력>과 비슷한 상상의 장면이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염력>을 쓰레기 영화라고 말했지만 나는 <염력>에서 뭔가를 느꼈었다. ‘이렇게라도 이기고 싶었다.’는 심정. <염력>은 이 사태를 보고 정말 너무나 분해서 이들에게 초능력을 줘서라도 저항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던 연상호 감독의 상상이 들어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니까 <스틸 라이프> 역시 지아장커의 상상이 들어간 거다. 그렇게 아름답고 사람 살기 좋았던 산샤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야? <우주전쟁>처럼 외계인이 나타나서 다 쓸어가 버린 거 아니야? 건물이 로켓처럼 발사되어 하늘로 날아가 버린 거 아냐? 그런 게 아니라면 도저히 한순간에 이 도시가 변해버린 것이 설명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니면 이런 결정을 내린 중국 정부가 외계인들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 의도가 어찌 됐든, 이 너무나 중국스러운 영화에서 중국과 어울리지 않는 장면들을 본 것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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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꼭 봐야하는 영화, 아니 꼭 봐야하는 영화들 우선순위에 올려야하는 영화를 추가한다. 지아장커의 <플랫폼>, 아직도 한 편도 못 본 천재 감독이라 일컬어지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열대병>(과 그의 모든 작품들), 그리고 세상을 떠난 감독들의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10>(과 그의 모든 작품들). 사실 위에 정성일 평론가가 언급한 영화 중 본 영화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