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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se7en)> 관람. 데이빗 핀처 감독의 1995년 작. <나를 찾아줘>(Gone Girl, 2014) 보고 완전 반했던 감독이다. <조 디악>, <파이트 클럽>도 재밌게 봤고, 케빈 스페이시와 함께 한 <하우스 오브 카드>는 내 베스트 미드 중 하나이다. 케빈 스페이시 얘기가 나온 김에 이 배우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자면 정말 재능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영화 <세븐>에서도 그다지 오래 등장하지 않지만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낸다. 특히 자수하는 장면에서 “디텍티브!” 하며 소리치는 목소리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하우스 오브 카드>도 솔직히 케빈 스페이시가 8할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시리즈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좋지 않은 이유로 다시 볼 수 없게 되어 안타깝다. 물론 그의 죄를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평생 죗값을 치루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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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은 스릴러 장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는 역시 껍데기일 뿐 가지고 있는 주제는 매우 무겁다. 그래서 영화는 재밌지만 다 보고나면 머리가 무거워진다. 물론 긍정적 의미의 무거움이다. 영화의 배경은 가상의 도시다. 영화에 도시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지만 이 도시는 범죄가 끊이지 않는 도시로 설명된다. 그냥 편하게 고담시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 같다. 이 도시에서 오랫동안 형사 생활을 해왔던, 그리고 이제 곧 은퇴를 앞두고 있는 서머셋 형사(모건 프리먼)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를 대체하기 위해 새내기 밀스 형사(브래드 피트)가 등장하는데,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끔찍한 사건, ‘세븐’의 첫 번째 사건이 일어난다. 아니 기다렸다는 듯이가 아니라 진짜 기다렸던 것 같다. 나중에 자수를 통해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았다고 주장하는 존 도우는 지금 이 타이밍을 정확하게 기다렸던 것이다. 그렇다면 기다림의 주체는 존 도우일까 아니면 존 도우에게 명령을 내린 ‘신’일까. 그런데 그 혹은 신은 둘 중 어떤 것을 기다렸던 것일까. 서머셋의 은퇴를? 아니면 밀스의 등장을? 영화의 마지막, 결국 존 도우 혹은 신의 계획은 성공을 하게 되고, 밀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이를 한 인간의 타락으로 봐야할까. 조금 오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좀 오바다.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 놓고, 정해진 주제를 관객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끼워 맞추기를 하고 있는 영화라고 느껴졌다. 밀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겼다는 결론이 내게 ‘타락’으로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과연 누가 그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오히려 참는 것이 덜인간적으로 느껴질 것 같다. 영화의 진짜 마지막은 서머셋이 마무리 짓는다. <다크나이트>, <다크나이트 라이즈> 류 영화들의 엔딩 같은 마무리. 은퇴 후 이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겠다고 말했던 서머셋 형사는 이번 사건을 겪은 뒤 마음을 바꾼다. 멀리 떠나지 않겠다고 말한다. I’ll be around. 주변에 있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표현을 인용한다. “The world is a fine place, and worth fighting for.” 그리고 뒷부분에만 동의한다고 덧붙인다.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다짐. 내가 생각하기에 <세븐>의 유일한 주인공은 서머셋 형사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다 도구다. 그래서 다시 앞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얘기하자면, 신은 서머셋의 은퇴를 기다린 것이다. 정확히는 기다렸다기보다는 말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를 말리기 위해 신참 밀스 형사를 보내고, 존 도우에게 지령을 내린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모든 서머셋들에게. 이 지겹고 더러운 세상을 포기하고 멀리 떠나 세상 모든 일에 무관심한 채 편하게 살아가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포기하지 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니까 이 영화는 세상이 더럽다고 비판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희망을 얘기하는 영화이다. 마지막 서머셋의 변화가 이를 확실하게 말하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가 무엇을 근거로 ‘아이들을 낳아 키울 수 있을 만한 세상인가. 아니오.’라는 평을 남겼는지 심히 궁금하다. 실제로는 아니오를 영화의 제목처럼 일곱 번 쓰셨다. 조금 유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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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특이하게 크레딧이 거꾸로 올라간다. 여태껏 정말 많은 영화를 봤지만 크레딧이 거꾸로 올라가는 영화는 처음이다. 분명 나름 의도한 것이 있을 텐데 그다지 중요한 의미는 아닌 것 같아 생각하기 싫다. 아니 생각해주기 싫다. 지는 것 같다. 그보다 정말 시간을 들여 생각해보고 싶은 것은 서머셋 형사의 메트로놈이다. 창밖으로 밤새도록 고함과 욕소리가 들려와 잠을 잘 수 없는 서머셋 형사는 메트로놈을 키고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을 잔다. 메트로놈이 뭔가 균형을 잡아주는 장치라는 의미가 있을까. 아니면 셀프 최면의 한 형태로 봐야할까. 영화 중반 사건이 잘 풀리지 않는 상황, 밀스 형사와 말다툼을 한 뒤 서머셋 형사는 메트로놈을 켜도 잠이 오지 않자 빌어먹을 메트로놈을 던져버린다. 나에게도 개인적으로 메트로놈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는 Dr.Sleep 이라는 어플리케이션. 나름 유료 어플이다. 수면유도 음파 같은 거를 들려주는 어플인데, 나는 그것보다 이 어플이 제공하는 BGM을 애용한다. ‘물속에서’라는 트랙인데 이것을 들으며 잠을 청할 때가 많다. 둘째는 ‘천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노래다. 세월호 추모곡으로, 세월호 관련 다큐를 제작하기 위해 갔던 서울 시청 세월호 추모 공간에서 처음 알게 된 곡이다. 악몽으로 깼을 때 이 노래를 들으면, 추가적인 악몽을 꾸지 않게 해준다. 나의 메트로놈. 나에겐 이 메트로놈을 던지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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