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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6월 5일. 바닷마을 다이어리(2)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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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는 영화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어제 얘기했던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과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썼었다. 그러나 그 과거의 대상이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아빠처럼 세상을 떠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이제 다신 그 대상으로부터 미안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면, 그냥 코우다 사치처럼 마음속으로 용서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오히려 이것은 기회일 수도 있다. ‘협상의 상대가 참석하지 않은 협상 테이블.’ 혼자서 협상안을 제시한 뒤, 결정을 내려 이 기나긴 전쟁을 종결시킬 수 있는 기회. 오로지 내 마음 먹기에 따라 달린 것이다. 사치는 아버지는 진짜 원망스럽지만, 그래도 다정한 사람이었나 보다.’라는 말을 하며 마침내 종전 선언을 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그래서, 사치의 난중일기[亂中日記]’로도 볼 수 있다. 10년 뒤에도 20년 뒤에도, 50년 뒤에 할머니가 되어서 다시 펴보아도 웃으며 볼 수 있는 다이어리. 나도 언젠가 이 일기를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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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마을 다이어리>에는 네 여자와 1:1 매칭으로 네 남자가 나온다. 이 네 남자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후반부 첫째 사치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남녀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 나오는데, 폭죽놀이가 한창인 이 상징적인 순간에 세 커플을 이어 붙이는 방식은 솔직히 조금 유치했다.) 둘째 요시노가 직장 동료에게 반한 순간은 친한 식당 아주머니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 해안가에서 이에 대해 분풀이는 하는 순간이다. 요시노는 하느님이라는 작자한테 화가 난다.”고 말하는데, 그러자 남자는 하느님이 생각하지 못하면 우리라도 해야지라고 하며 차선책을 제시한다. 셋째 치카는 낚시를 좋아한다. 처음 숙소에 도착했을 때도 제일 먼저 낚시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나중에 스즈가 아빠도 낚시를 좋아했다는 얘기를 하자 희미한 미소를 머금는다. 그리고 등산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가 낚시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 그를 좋아하게 된다. 어쩌면 뭔가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일 수도 있다. 넷째는 자신의 존재만으로 상처인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 얘기를 했을 때 남자도 자신의 얘기를 들려준다. 이미 아들이 둘인 집에 딸을 바라고 임신을 해서 낳은 셋째 아들이 자기라고. 자신도 자신의 존재가 불편하다고. 첫째 사치의 사랑이 가장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아내가 있는 남자를 좋아한다.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던 그 문제점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남자 역시 자신의 아버지처럼 우유부단하고 뭔가에 책임을 지지 않았기에 이별하게 된다. 영화에는 회상씬이 없어 당연히 네 자매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네 남자를 합친 사람이 아마 아버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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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발로 시작해서 발로 끝난다. 요즘 오프닝을 주목해서 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오프닝이 좀 독특하다. 마치 다른 감독이 찍은 것만 같다. 영화가 시작하면 발이 보이고, 카메라가 발을 따라 올라가면 둘째 요시노가 나체인 상태로 남자와 잠을 자고 있다. 일단 굳이 변태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이 장면은 나름 어떤 상상을 유발하는 장면이고, 이 영화는 말했다시피 둘째의 영화가 아닌 첫째의 영화이다. 영화의 분위기와 시점이 본편과 다른 것이다. 엔딩은 엄밀히 말하면 정확히 발이 나오진 않지만 발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바닷가에서 각자에게 할당된 대사들을 모두 소화한 배우들은 조금 자유롭게 해변을 걷는다. 평화로운 음악과 교과서적인 웃음소리. 그러다 치카는 발이 젖었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셋째의 발이다. 하지만 이번에 그 발은 모두와 함께다. 오프닝에 혼자 있던 발이 이제 함께 걷게 되었다는 것 정도로 의미를 두어도 될까. 좀 유치하지만 이것 외에는 잘 모르겠다. . 왜 발일까. 히로카즈의 다른 영화를 보면 알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