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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6월 7일. 열대병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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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은 감독들의 첫 작품을 보는 달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이어 이번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았다. 영어로는 Apichatpong Weerasethakul. 외우기 상당히 어려운 이름인데, 또 몇 번 말하다 보면 입에 챡 잘 달라붙어 금방 외워진다. 오늘 본 영화는 <열대병>. 열대병은 열대지방에서 많이 발생하는 병이라고 한다. 아마 이 영화의 배경인 태국이 열대지방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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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 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솔직히 그냥 모든 게 생소한 영화였다. 언어도, 사람들의 외모도, 배경도. 사람들이 몇 명 나오지도 않는데 누가 누군지 헷갈릴 정도였다. <열대병>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전 세계의 평론가들이, 특히 정성일 평론가가 엄청나게 높이 평가했던 영화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 ‘나도 뭔가 느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고, 당연히 아무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럴 때일수록 난 더 그러지 못하더라. 아무튼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는데, 첫째는 두 남자가 소소히 사랑을 나누는 일상, 그 다음엔 한 남자가 전설 속의 야수(?)를 찾아 정글을 헤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독특한 여러 기법들과 의미심장한 대사들이 이어지는데, 솔직히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느낄 수가 없었다. 다음에 컨디션 좋을 때 한 번 더 제대로 봐야할 듯. 오늘은 인상적인 장면만 기록해둔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세 번을 다시 돌려서 보기까지 했다. 초반부 오프닝 크레딧이 나오는 장면인데, 정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갑자기 나를 보며 아는 체를 한다. 여기서 란 진짜 나, 화면을 보고 있는 나를 말한다. 정확히는 카메라를 본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거기서 날 지켜보고 있었어?’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제작사, 감독, 주연 등의 크레딧이 흐른다. 이 순간만큼은 이게 영화인지, 내가 지금 광고를 보고 있는 건지, 잠깐 동안은 영화가 아닌 걸로 감독과 내가 합의를 봤었던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 외에, 특히 2부는 진짜 수수께끼 투성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엉클 분미>도 이정도일까? 제발 <엉클 분미>는 나에게 와 닿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