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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감독들의 첫 작품을 보는 달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이어 이번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를 처음 보았다. 영어로는 Apichatpong Weerasethakul. 외우기 상당히 어려운 이름인데, 또 몇 번 말하다 보면 입에 챡 잘 달라붙어 금방 외워진다. 오늘 본 영화는 <열대병>. 열대병은 열대지방에서 많이 발생하는 병이라고 한다. 아마 이 영화의 배경인 태국이 열대지방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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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영화는 처음인 것 같다. 솔직히 그냥 모든 게 생소한 영화였다. 언어도, 사람들의 외모도, 배경도. 사람들이 몇 명 나오지도 않는데 누가 누군지 헷갈릴 정도였다. <열대병>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고, 전 세계의 평론가들이, 특히 정성일 평론가가 엄청나게 높이 평가했던 영화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 ‘나도 뭔가 느껴야 된다’는 강박이 있었고, 당연히 아무 특별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럴 때일수록 난 더 그러지 못하더라. 아무튼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가 결합되어 있는데, 첫째는 두 남자가 소소히 사랑을 나누는 일상, 그 다음엔 한 남자가 전설 속의 야수(?)를 찾아 정글을 헤매는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독특한 여러 기법들과 의미심장한 대사들이 이어지는데, 솔직히 뭐가 대단하다는 건지, 느낄 수가 없었다. 다음에 컨디션 좋을 때 한 번 더 제대로 봐야할 듯. 오늘은 인상적인 장면만 기록해둔다. 나는 이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세 번을 다시 돌려서 보기까지 했다. 초반부 오프닝 크레딧이 나오는 장면인데, 정자에 앉아 있던 남자가 갑자기 나를 보며 아는 체를 한다. 여기서 ‘나’란 진짜 나, 화면을 보고 있는 나를 말한다. 정확히는 카메라를 본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거기서 날 지켜보고 있었어?’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서 제작사, 감독, 주연 등의 크레딧이 흐른다. 이 순간만큼은 이게 영화인지, 내가 지금 광고를 보고 있는 건지, 잠깐 동안은 영화가 아닌 걸로 감독과 내가 합의를 봤었던 건지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이 장면 외에, 특히 2부는 진짜 수수께끼 투성이.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는 <엉클 분미>도 이정도일까? 제발 <엉클 분미>는 나에게 와 닿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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