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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김한우 (영화 일기)

6월 11일. 바톤 핑크 Barton Fink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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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엔 형제 감독의 <바톤 핑크>(Barton Fink)를 봤다. 1991년 영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감독상, 남우주연상(존 터투로)을 받았다. 코엔 감독의 영화는 <파고>,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밖에 보지 못했었다. 그러나 오늘 <바톤 핑크>를 보고 이 형제 감독의 영화는 하루 빨리 모두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본 이 감독의 영화 중엔 오늘 본 <바톤 핑크>가 베스트. <파고>도 물론 정말 인상적인 영화였지만, 그 영화는 다소 장르 영화의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반면 <바톤 핑크>는 좀 더 상징적인 메시지들을 품고 있어 영화를 보면서, 또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더 좋았다. 그러면서 영화의 만듦새도 더 좋았다. 무엇보다 카메라 움직임이 좋았는데 <파고>와 같은 촬영 감독(로저 디킨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달랐다. 아마 <바톤 핑크>가 주로 실내, 특히 호텔에서 진행되는 영화라, 한정된 공간에서 다양한 움직임을 줬던 것이 나에게 어필이 된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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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톤 핑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연출이나 기술적인 부분을 얘기하는 것은 솔직히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쓴 앞문단은 내가 생각해도 전부 버려도 상관없는 문장들이다. 이 영화는 영화가 보여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주인공은 극작가 바톤 핑크. 그는 뉴욕에서 보통 사람에 관한 연극 시나리오를 써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다. 그런 그의 다음 행보는 할리우드다. 영화의 배경은 1941. 영화는 당시 연극으로 뜬 작가가 할리우드로 스카웃 당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를 전개한다. 바톤 핑크 자신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자기를 할리우드로 스카웃하려는 사람에게 할리우드로 가면 이제 더 이상 보통 사람에 대한 글을 쓸 수 없을 거라 말하며 고민한다. 당시 영화는 2018년 현재보다 더 예술이 아닌 B급 장르로 평가받았던 상황인 것 같다. 물론 2018년 지금도 많이 위기이긴 하다. 그러나 고민도 잠시, 바톤 핑크는 LA의 한 호텔에 도착한다. 이때 감독은 바톤 핑크가 LA로 이동하는 과정, 비행기를 타거나 택시를 타거나 하는 모습, 아니 심지어 조금이라도 걷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고, 곧 바로 바톤이 호텔 입구에 서 있는 모습으로 화면을 넘긴다. 그 사이에 보여주는 것은 그저 해변가에서 강한 파도를 맞고 있는 큰 돌뿐이다. 거센 외부 압력을 버티며 꿋꿋이 서있는 모습이 아마 바톤 핑크를 상징하는 듯하다. 근데 이 장면이 좀 웃긴 게, 그 돌을 딱! 보여주면서 오, 역시 바톤 핑크, 버티는 구만, 이라고 생각하게 해놓고 몇 초 만에 호텔에 서 있는 바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뭔가 전형적인 개콘 느낌이었다.

 

 아무튼 로비에 도착해 귀에 거슬리는 신경질적인 소리를 내는 벨을 누르니, 긴 기다림 끝에 호텔 직원이 도착하는데, 못생긴 얼굴이 하나 올라온다. 내가 좋아하는 스티브 부세미. 여기서 또 만나 너무 반가웠다. 그 직원이 바톤에게 단기/장기 투숙 여부를 묻자 바톤은 얼버무린다.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방에서 문제의 그림(혹은 사진)을 보게 된다. 해변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는 한 여인의 뒷모습을 담은 그림. 바톤은 영화가 진행되는 중 끊임없이 이 그림을 쳐다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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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톤 핑크>는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굉장히 현실적인 척 진행되던 영화는 어느 순간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그 경계를 넘어가 있다. 뜬금없이 혈흔이 낭자한 살인 현장을 보여주고, 마치 한 몸-두 머리 같이 말을 하는 형사가 나타나 유일하게 의지했던 이웃 친구가 알고 보니 연쇄살인마라는 충격적인 말을 한다, 이를 지켜보며 계속해서 땀을 흘리던 호텔은 마침내 불타버린다. 호텔이 일종의 의사 표현을 했다는 점에서 <샤이닝>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 알 수 없는 것 투성인 영화에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튼 당시 할리우드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은 힘들다는 것이다. 창작고. 또 창작고다. 작가에게 글을 쓰는 것은 진짜 오지게 힘든 일인 것이다. <샤이닝>의 잭 니콜슨도 글을 쓰다 미쳐버렸었고, 얼마 전 <버닝>의 종수(유아인)도 소설을 쓰지 못해 괴로워하다 살인까지 저질렀다. 영화 초반 작가는 줏대(gut)‘로 글을 쓴다. 줏대가 있어야 무엇이 올바른(right), 적합한(adequate)지 알 수 있다며 의기양양했던 바톤도, 아무리 쥐어짜내도 글을 쓰지 못했다가, 일련의 사건을 겪은 후, 친구 찰리가 남기고 간 의문의 상자를 바라보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이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을까?’ 라는 단순한 호기심이 바톤에게 초심을 찾게 해준 것일까? 그렇게 쓰여진 작품은 비록 영화 제작자에게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바톤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 작품은 자신의 최고의 작품이기에 뭔가 희망이 보이는 결말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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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엔딩. 마침내 도착한 해변가. “다시~ 돌아온 바닷가~”(feat. 바다의 왕자 박명수). 영화 초반에 등장했던 큰 돌이 한 번 더 등장한다. 예정된 도착지. LA에 도착하기 전엔 굳건히 서 있는 것 같아 보였던 돌이, 분명 같은 돌임에도 불구하고 왠지 달라 보인다. 이번엔 물에 흠뻑 젖은 생쥐 같아 보인다. 지쳐 보인다. 이곳은 현실일까, 아니면 바톤 핑크의 상상일까. 눈앞에 문제의 그림에서만 봤던, 그 여인이 나타난다. 여인은 바톤 핑크에게 그 상자에 무엇이 들었냐고 물어본다. 바톤 핑크는 모른다고 답한다. 그러자 여인은 이상하다는 듯 그 상자가 네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바톤 핑크는 그것도 모르겠다고 답한다. 이 상자를 크리에이터들의 영감(inspiration)’이라고 봐도 될까. 이게 뭔지, 그리고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것 말이다. 이번엔 바톤 핑크가 묻는다. 영화 내내, 아니 어쩌면 자신의 평생 동안 묻고 싶었던, 궁금해 미칠 것 같았던 그 질문을. “Are you in pictures?” 수수께끼 같은 영화 <바톤 핑크>는 마지막까지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진다. ‘Are you in pictures’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되는 문장이다. 내가 본 한글 자막엔 영화 배우세요?’라고 나왔다. ‘in pictures’영화를 한다’, ‘영화에 나온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정말 초급 영어로 저 문장을 해석해보면 ‘in pictures’(‘pictures’‘s’가 걸리긴 하지만) 그냥 일차원적으로 사진 속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Are you in pictures?”당신은 사진 속에 있는 겁니까?’라고 들리기도 한다. 그러자 여인의 답 : “Don’t be silly.” 그리고 바로 이어서 벽에 있던 그림과 같은 포즈를 취하는, 아니 취해 주는여인. 어리석은(silly) 바톤에게 동작 힌트를 주는 것만 같다. 91년 영화에서 보는 몸으로 말해요’. 영화를 다시 돌려보고 확인한 것이지만 아무튼 결론적으로 사진과 눈앞의 현실은 같지 않았다. 미묘하게 다르다. 그걸 지켜보는 바톤 핑크의 표정. 그는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일까,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일까. 사실 그가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중요한 것이지 않다. 이걸 보는 관객, 내가 깨달았으면 된 것이다. 친절한(혹은 착한) 감독의 마지막 힌트. 바다에 새 한 마리를 떨어뜨린다. ‘풍덩!’ 이건 그림과 같지 않다, 는 판결을 내리는 듯하다. ‘땅땅땅.’ 영화 초반 바톤에게 할리우드행을 권하던 한 남자의 말 한마디가 떠오른다. “It was a joke.” <바톤 핑크>. 명작. 땅땅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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